어민 반대·국제사회 우려 외면…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일본 오염수 24일부터 방류]
“저장에 여유, 지하수 유입 해결 우선” 시민사회 조언도 무시
중국·홍콩, 추가 규제 방침…NYT “한·일관계 복잡하게 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를 24일 바다로 방류할 계획을 밝히면서 일본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어민들의 생업을 고려해 방류 개시일을 정했다는 입장이지만, 방류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한 채 결정한 것이라 ‘개문발차’란 비판이 나온다. 원전 부지 상황을 고려할 때 굳이 성급하게 방류할 필요가 없다는 시민사회의 지적을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방류를 개시한 뒤 철저한 모니터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으나, 오염수가 일단 방류되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돌이킬 수 없기에 국제사회의 불안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무시한 일본의 선택은 국제관계에 적잖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1원전의 오염수 방류는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이 시설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한 이후 12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원전 시설은 사고 뒤 가동이 중단됐으나, 지하수와 빗물이 유입되며 하루 140t 안팎의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생성됐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원전 부지 내 물탱크에 보관해왔지만 저장량이 늘어나며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가동이나 폐로 작업에 필요한 공간이 줄어들자 오염수 처리를 타진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관계 각료회의에서 오염수 처리 방식으로 해양 방류를 선택했다. 지난해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방류 계획을 인가한 뒤에는 올해 봄이나 여름쯤을 목표로 설비 작업을 진행했다.
방류 개시일이 24일로 결정된 것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미·일 정상회담 참석 일정과 일본 어민들의 사정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은 후쿠시마현 앞바다의 저인망 어업이 다음달 재개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이달 말 방류를 선택할 것이라고 관측해왔다.
하지만 후쿠시마 현지 어민들은 방류가 왜 지금 이뤄져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 시 풍평(소문) 피해가 날 수 있다는 어민들의 우려를 반영해 2015년 ‘오염수는 관계자의 이해 없이 처분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대책이 준비돼 있다며 설득 작업을 벌여왔으나, 방류 개시일 결정 전날까지도 어민단체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방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시민사회의 조언도 빛을 잃게 됐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바다 방류를 결정할 당시 올여름쯤 탱크가 가득 찰 것으로 예상했으나, 강수량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쳐 탱크가 차는 시점은 내년 2~9월로 늦춰진 것으로 추정된다.
후쿠시마대 연구자들이 모인 협의체 ‘후쿠시마 원탁회의’는 지난 21일 오염수 방류를 막판까지 만류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정부가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에 지하수 유입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하수가 유입되면 오염수는 계속 불어나는데, 이에 대한 근본 대책 없이 방류만 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7월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발표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주변국들을 설득해왔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실제 방류하기 시작하면 주변국 국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염수 방류의 잠재적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 등에선 그간 IAEA가 도쿄전력 자료를 중심으로 오염수 영향을 평가했기에 객관성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삼중수소뿐 아니라 여러 방사성 핵종이 실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반영, 오염수 방류를 개시하면 모니터링 작업을 충실히 이어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환경성이 지난해 6월부터 제1원전 주변의 해역 35개소에서 방사성 물질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 후 후쿠시마 원전 20㎞ 지점까지 해수·어류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행할 예정이다. IAEA도 방류 현장에 상주하며 작업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강화 방침을 밝혔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일본에 대한 새로운 수입 규제를 고려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련 부문이 식품 안전과 중국 인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 통제를 즉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오염수 방류가 최근 개선된 한·일관계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염수 방류가 역내, 특히 양극화된 한국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이 논란은 한·미·일이 더 강력한 3자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해 최근 몇 달간 이뤄낸 진전을 복잡하게 만들 위협이 됐다”고 분석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 오염수 24일부터 방류] ‘데브리’ 제거 시작도 못해…폐로 시점도 미정
- 어민·상인 “결국 닥친 오염수 방류…정부 대책도 없이 국민 외면”
- [일본 오염수 24일부터 방류] “국민 안전 비상” 야당 강력 반발
- 생태안전 담보 없이…24일, 일본 오염수 쏟아진다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