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한다며 국가 R&D 예산 3조 넘게 삭감
매년 꾸준히 증가해 온 국가적 지원, 전년 대비 10% 넘게 축소 이례적
과학계 “카르텔 실체 있는지 의문”…과학·기술 기초 체력 저하 우려
내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이 전년보다 13.9%나 줄어든다. 2016년 이후 국가 R&D 예산 감소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카르텔’을 깨라는 주문이 예산안 대폭 삭감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학계에선 카르텔의 실체가 진짜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R&D 예산이 크게 줄어들면 국가 발전을 위한 기초 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과학기술 입국’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과학 발전을 지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2일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상정·논의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주요 R&D 예산은 총 21조5000억원이 편성된다. 이는 전년 대비 13.9%(3조4000억원) 감소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국가 R&D 예산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전년 대비 10%가 넘는 감소 폭은 이례적인 일이다. 2016년 한 자릿수 비율로 소폭 감소된 적은 있다.
이번에 발표된 R&D 예산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적한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학계와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R&D 분야가 ‘카르텔’이 있는 곳으로 지목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과기정통부 발표에 따르면 총 108개 R&D 사업에서 3조4000억원이 줄어들 예정이다. 특히 기초 연구 예산은 올해보다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은 10.8% 감소한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임자가 정해져 있는 R&D, 나눠주기 R&D 등 그릇된 형태는 반드시 없애고 재발하지 않도록 연구과제 관리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R&D 예산안 삭감에 대해 과학계에선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일단 ‘이권 카르텔’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카르텔은 이권이 있는 특정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득을 지키는 것인데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권한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또 “연구 비효율이 문제라면 그건 연구를 직접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종 제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초연구가 주요 예산 삭감 대상에 들어가 있는 것과 관련해 “기초 연구를 등한시하고 당장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중진국의 함정’에 우리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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