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가계빚 증가 주범’ 딱지에…시중은행들 ‘50년 주담대’ 놓고 눈치보기
연령 조건 신설·판매 여부 저울질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의 원인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거론하면서, 해당 상품을 취급하는 주요 시중은행이 당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NH농협은행이 50년 만기 대출을 중단하자 다른 은행들도 대출 조건 변경 등을 검토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취급 조건을 변경할 것인지를 검토 중이다. 특히 50년 만기 대출이 가능한 나이 조건을 신설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세 등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50년 만기 상품을 지속해서 판매할지 여부를 내부 검토하고 있다.
이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이 상품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만기를 50년으로 연장하면 같은 액수의 돈을 빌려도 매달 상환해야 하는 액수가 줄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할 수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부터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고 있는데 어떤 연령대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본 뒤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미만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 보고 있다”며 “아직 결정된 방향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연속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올해 2분기 가계신용 잠정 통계에서도 2분기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31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나·우리은행과 KB국민·신한·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지난달부터 차례로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최장 50년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발언이 나오자 농협은행이 가장 먼저 50년 만기 상품 판매를 이달 말 종료하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50년 만기 대출이 애초 2조원 한도의 특판 상품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은행권에선 금융당국의 압박성 메시지에 농협은행이 백기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에선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대출을 문제 삼은 것에 대해 진단과 해법이 틀린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계대출이 증가 전환한 근본적인 이유는 부동산 거래가 되살아났기 때문이지, 대출 만기 연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가계대출이 증가 전환한 시기는 주요 시중은행이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기 전부터였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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