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고리 끊겠다”는 전경련…과연 달라질까
류 회장 “어두운 과거 깨끗이 청산”
윤리경영위 구성·윤리헌장 발표
대선 캠프 출신 김병준, 고문직에
윤 정부와 가교 역할 ‘실세’ 가능성
4대 그룹은 정권 눈치 보다 ‘복귀’
“내부 자정장치 미흡…무늬만 변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를 표방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명칭을 바꾸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65)을 신임 회장에 추대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존폐 기로에 섰던 전경련이 윤석열 정부를 등에 업고 4대 그룹 복귀와 함께 조직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류 회장은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는 물론 재계도 여전히 혁신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전경련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단체 명칭 변경과 회장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1968년 이후 55년 만에 새 간판을 달게 된 전경련은 초심을 찾겠다는 각오를 담아 1961년 출범 당시 명칭인 한경협으로 돌아갔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류 회장은 중견 방산업체 풍산그룹 총수로 지난 20년간 전경련 회장단으로 활동했다. 전경련과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한미재계회의에서 한국 측 위원장도 맡고 있다.
■ 9월 윤리경영위 출범…정경유착 단절?
류 회장은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국민의 준엄한 뜻에 따라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외사업 등 경영 현안을 심의하는 윤리경영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9월 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한경협으로의 명칭 변경 허가가 나오는 대로 5명의 위원 명단도 발표한다.
이날 전경련은 정경유착 근절 의지를 담은 윤리헌장도 발표했다. 윤리헌장에는 외부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 단호히 배격, 윤리적이고 투명한 사업 영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협력 선도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선언적인 수준일 뿐, 부당한 압력을 차단할 방법과 대처 방안이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았다.
류 회장은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250여명에 달했던 직원 수가 80여명으로 급감했다.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경우 박사급 인력이 25명에서 6명으로 줄어 기존 인력만 갖고 글로벌 싱크탱크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월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으로 취임한 김병준씨는 6개월 임기를 마친 뒤에도 고문직을 맡아 한경협 활동에 관여키로 해 논란을 자초했다. 김씨는 회장직무대행 수락 인사를 통해 한경연을 국제적 수준의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6개월 사이 달라진 것은 단체 명칭밖에 없다.
특히 정치인 출신인 김씨가 경제 관련단체에 고문으로 남는 것 자체가 정권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경련 내부에서조차 비상근인 류 회장을 대신해 김씨가 ‘실세 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선 캠프 상임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씨는 회장직무대행 취임 후 전경련을 정부 뜻대로 ‘착착’ 움직였다는 평을 듣는다. 전경련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3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사건의 피고인 일본 기업들의 반성은 쏙 빠졌다. 야당을 상대로는 불통으로 일관했다.
■ 대정부 소통 ‘전경련 쏠림’에…
한경연을 한경협에 흡수 통합하는 안건도 총회에서 처리됐다. 이에 따라 전경련을 ‘탈퇴’했지만 한경연 회원사로는 남아 있던 4대 그룹의 회원 자격도 한경협에 승계돼 슬며시 단체로 복귀했다.
4대 그룹의 복귀는 정권 눈치 보기 성격이 크다. 전경련은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김씨를 매개로 대통령실과의 관계를 복원한 뒤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경제단체 행사를 주관했다. 그간 “눈에 띄는 쇄신이 없으면 재가입은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4대 그룹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흐름 변화를 읽고 취한 조치다. 전경련은 목적사업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사업,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추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의 발단이 된 특별회비 납부 등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내부 자정 장치가 미흡해 보인다”며 “표면적으로는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권과의 소통 창구를 복원한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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