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일어나 앉으면 달라지는 것들

기자 2023. 8. 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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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으로 3년 동안 누워만 지내시던 환자분을 일으켜 앉도록 하기 위해 수동 관절운동을 진행하던 우리에게 보호자가 물었다. 환자분은 의식은 있었지만, 3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지낸 탓에 모든 관절이 굳어져 있어 일어나 앉기가 쉽지 않았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아파하시는데, 꼭 해야 해요? 어차피 못 움직이시는데 앉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네, 중요해요. 누워 계시는 것보다 앉으시는 게 훨씬 건강해요. 돌보시기도 편하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알려드리는 걸 매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어나 앉으면 생활하는 데 여러 이점이 있다. 누워만 있으면 꼬리뼈 뒤쪽에 욕창이 생기기 쉽다. 꼬리뼈는 피부가 얇고 지방이 없는 부위이기 때문에 조금만 눌려져도 욕창이 잘 생긴다. 게다가 한번 욕창이 생기면 대변과 소변이 흘러내려 고이는 위치라 잘 낫지 않는다. 일어나 앉으면 대개는 좌골에 압력이 가해진다. 좌골만 해도 근육과 지방층이 도톰하게 자리 잡고 있어 꼬리뼈보다 훨씬 낫다. 자세 변화(체위 변경)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어, 욕창 예방에 도움이 된다. 흡인성 폐렴 예방 효과도 있다. 누워서 지내다 보면 위의 음식물이 식도로 역류하기가 쉽고, 결국 기도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게 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이점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인지기능이 좋아지면서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누워서 지내는 환자분들의 방 안은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전구를 갈아 끼우지 못해 집 안이 어두운 상태로 지내다가 넘어지는 낙상 사고가 일어나 골절이 생겨 몸져누운 분들도 있지만, 대개는 조명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을 꺼 놓고 지낸다. 누운 상태에서는 LED 조명이 바로 눈동자로 내리쬐기 때문에 조도를 어둡게 해놓고 있는 것이다. 아예 식사 때를 제외하곤 방 안에 조명을 켜지 않고 생활하는 분들도 많다. 방을 어둡게 유지하다 보니 낮인지 밤인지 시간이 잘 구별되지 않아, 낮에는 졸고 밤에는 깨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일중 리듬이 흐트러져 인지기능 저하 또는 이상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난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밝은 조명 이외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 인지기능을 유지할 만한 자극이 없다. 하지만 일어나서 앉으면 방 안의 가구도, 가족들의 얼굴도 보인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도, 창밖 계절의 변화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누워 있을 때보다 시야가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자극을 수용하기 쉬워진다. 다른 사람의 손길에 관대해진다는 의미이다.

누워 있는 환자분에게 뭔가 처치를 해야 할 때는, 환자분의 입장에선 공격당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인지기능이 떨어진 분이면 더 심한데, 시야가 좁고 상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길이 모두 공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누워 있는 상태인 내게 다가오는 것이 타인의 손바닥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그렇다고 누워 있는 환자분에게 처치를 하려고 할 때, 환자분의 시야에 내 손바닥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일어나 앉으면 이런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 시선을 마주칠 수 있고, 마주친 시선은 앞으로 다가감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신호가 된다. 환자분의 시야 안에 내 손바닥만이 아니라 행동거지를 전체적으로 담을 수 있어, 구태여 환자분이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

일어나 앉을 때 핵심 관절은 고관절이다. 바깥으로 벌어진 고관절이 안쪽으로, 그리고 아주 약간만 더 고관절이 구부러질 수 있도록 각도를 키우면 충분히 일어나 앉을 수 있다. 앉을 수 있으면 휠체어에 탈 수 있고, 그러면 새 세상이 열린다. 마주보고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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