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정부 조세정책, 방향부터 틀렸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최상위 1%에 대한 개인소득세와 자본소득세 한계세율을 최소 60% 이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부유층 과세는 심각한 불평등을 세계적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간주됐다. 이른바 ‘부유세’의 귀환이었다.
그것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기간에 새롭게 늘어난 부의 63%를 최상위 1%가 가져간 상황에서, 과거 수십년간 이어져온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감세가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호소였다. “실질적 근거가 전혀 없는 허상”인 ‘낙수효과’를 홍보하며 부자들과 기업에 부와 권력을 몰아주는 기득권 정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언젠가 워런 버핏은 부자들이 보통의 노동자들은 접근할 수 없는 조세 회피 전략으로 혜택을 누린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테슬라 주식을 팔지 않고, 담보로 대출을 받아 트위터 인수 자금을 마련한다고 발표하면서 초부유층의 납세 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포스트코로나 국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미국 민주당을 중심으로 부유세 논의가 재점화된 배경이었다.
올해 1월 미국의 진보 성향 초부유층 205명이 다보스 포럼에 공개서한을 보내 부유세 도입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바야흐로 ‘슈퍼리치’들의 자산 가액에 세율 1%나 2%를 적용하는 부유세 도입의 효과가 공공연히 논의된다. 바이든 정부도 적어도 겉으로는 1억달러 이상을 버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소득의 20% 이상을 거둬들이는 ‘억만장자 최소 소득세’를 추진 중이다.
한편 그런 와중에 유럽연합(EU)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에너지 기업과 은행을 대상으로 ‘횡재세’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는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방지하는 증세의 일환으로 글로벌 최저한세가 도입되고 있다. 유럽연합과 독일에서 각각 7500억유로 규모의 ‘차세대 유럽연합(NGEU)’ 기금과 2000억유로 규모의 ‘경제방어 보호’ 기금을 조성해 재정운영의 신축성을 기해온 점도 눈에 띈다. 요컨대 주요 선진국 정부는 경제회복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부자 증세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얼마 전 공개된 ‘2023년 세법개정안’은 기존 비과세나 공제를 확대하고 세금 감면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해에 있었던 세제개편과 보유세 인하, 금융투자 과세 유예, 그리고 이번 세법개정안까지 보면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는 대체로 최근 세계적인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에 가깝다.
올해 ‘K칩스법’에 따른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와 하반기의 바이오 의약품 투자 세액공제 확대를 더하면 세수 효과는 역대급 감세다. 그중 법인세 감세가 가장 두드러진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자산 과세도 감세폭이 작지 않다. 한마디로 정부의 의지는 부자 감세와 기업 감세를 밀어붙이려는 것으로 읽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0년 2월 “죄의 구조”로 비판했던 그 부자 감세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 기조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낙수효과에 대한 헛된 기대를 드러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부와 권력의 기득권에 기초한 더 많은 ‘지대’를 약속하는 노골적인 ‘정치 감세’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구체적인 세입 확충 계획이 없던 정부가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국유재산 매각 아니었던가. 부자와 기업만 챙기고 미국 무기를 사들이다가 재정이 악화되니 복지부터 줄이고 연구·개발(R&D) 예산을 깎고 급기야 공공 자산까지 공익적 가치가 아닌 상업적 가치로 평가해 민영화함으로써 세수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식이다. 제발 그 과정이 부패한 관료와 재벌, 외국 자본의 한바탕 ‘이권 놀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 정부 조세정책은 방향부터 완전히 틀렸다. 케인스 경제학의 근본인 유효수요의 원리를 케인스 자신보다도 먼저 발견했다고 알려진 폴란드의 저명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는 일찍이 1944년 어느 글에서, 위기 이후 경제의 안정과 완전고용을 위한 길로는 자산 과세 강화 등 증세와 적극재정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공부문이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정책 기조만 따지면 윤석열 정부의 길과는 180도 정확한 반대다. 오늘 칼레츠키의 길은 부유세와 횡재세를 도입하고 긴축에 맞서 경제구조의 진보적 대전환을 예비하는 길이다. 둘 중 어느 길이 맞을까. 어떤 길 위에 설 때 우리는 민중의 경제적 존엄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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