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좋은 연설문, 멋진 연설문
연설문은 문학일까? 서정·서사·극·교술의 네 가지 갈래를 문학으로 다루는 교육에서 연설문은 이른바 ‘비문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서구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수사학은 변론술에서 출발했다. 동아시아 역시 왕 앞에서 세 치 혀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전국시대 유세객들은 이미 연설의 기술을 고도로 추구했고, 이후 문학의 핵심적인 갈래로 발전해왔다.
공자는 “말은 뜻만 전달하면 된다”고 했지만 “말에 문(文)이 없다면 멀리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말도 남겼다. 내실 없는 겉멋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읽는 이에게 지적·정서적 울림을 줌으로써 설득의 목적을 제대로 구현해낸 글이라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학에 속할지와 무관하게 좋은 연설문과 안 좋은 연설문, 그리고 멋진 연설문은 분명히 존재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한 편의 연설문으로 평가해 보면 어떨까? 간략한 인사말과 함께 독립운동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한 경축사는, 정전협정 70주년임을 언급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의 대결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안보를 위한 한·미·일 연대를 강조했다. 이어서 자유시장경제 재건을 위한 경제 및 과학, 교육 등의 현안을 언급한 뒤 글로벌 비전을 제시하며 마무리했다.
그런데 문두에 네 번 “국민 여러분”을 사용해 단락 구분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자꾸 맴돌고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의 접합은 맥락이 석연치 않다. 여러 번 말한다고 강조되는 게 아니라 단계를 밟아 요령 있게 배치해야 힘이 실리는 법인데, 몇몇 핵심어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묻혀 버리거나 도리어 거부감을 준다.
나아가 대통령이 광복절을 경축하는 자리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설이라면 용어 사용에서 표현 방법, 단락 구성에 이르기까지 그 상황과 격식에 알맞아야 효과가 배가된다. 설득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든, 상당수 국민이 주제 설정에 의아해하거나 특정 문구 때문에 분노하게 만든다면 좋은 연설문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멋진 연설문도 좋은 정치만은 못하지만, 좋은 정치 없이 멋진 연설문이 나올 수 없음 역시 자명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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