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불안한 안보협력 ‘과속페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정상의 정치적 용기”를 거듭 언급한 데서 보듯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는 한국도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적인 ‘양보’로 한·일관계가 급진전하지 않았다면 세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오솔길 산책은 훨씬 이후에나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3국 협력의 “새 시대”이든 “준동맹화”이든 미국의 기획·각본·연출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한·일과의 양자동맹의 토대 위에서 삼각 안보공조를 완성하는 것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로 여겨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목표이기도 했던 이를 고안·실행한 핵심 인사들(캠벨, 블링컨, 설리번)은 그대로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왔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한국의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가입 여부가 관심을 모았을 무렵, 정부의 한 당국자는 “우리에 대한 미국의 주문은 쿼드 이전에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 한·미·일 협력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쿼드 확대 대신 3국 협력 복원을 선택한 미국의 판단은 주효했다. 한·미·일은 쿼드보다 더 강력한 안보공조의 틀이자 안보·경제·기술을 아우르는 역내 핵심 협의체로 변모했다.
앞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역내 위기 시 3자가 신속하게 상호 대응을 협의한다’는 공약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다영역 연례 연합훈련 실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 등은 명목상 북핵 위협 대응을 내걸었지만 대중 억제력 강화까지 내다본 포석이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일에 중국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 확보를 저지하는 데 동참할 것을 더욱 공공연히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각 부문·급 협의가 정례화하면 정부 조직의 관성에 따라 한·미·일 체제는 반영속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미국 내에선 “(3국의 국가안보 전략은) 상호 보완적일 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상대국 것을 (똑같이) 쓸 수 있을 정도”(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라는 식으로 한·미·일의 전례 없는 결속을 과시하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 나라가 아무리 밀착하더라도 국익과 전략까지 하나 될 수는 없다. 한·미 동맹도 한·미·일 협력도 언제나 통하는 ‘만능의’ 외교 수단일 리가 없다. 우리가 촉각을 세우지 않으면 설계자 미국의 의도대로, 또는 미·일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휘둘려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벌써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정부 외교의 취약점이 다시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국이 당면한 국익을 고려해 미국과의 ‘동조화’ 수위를 조절하고, 중국·러시아 등으로부터의 반작용을 관리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대중국 정책 부재를 둘러싼 우려가 한·중 갈등으로 현실화할 조짐이다.
일본과는 국민적 합의 없이 부작용에 비해 실익은 많지 않은 안보협력의 과속페달을 밟을 태세다. 과거사 문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래세대가 걸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도 국민의 정당한 우려를 무시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북핵 해결과 평화 실현을 고민하려는 노력은 실종됐다. 한 가지 새로운 것이 있다면 낯설고 이념적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라는 단어뿐이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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