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팝, 나라는 구해도 정치를 구할 수는 없다

기자 2023. 8.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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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은 애국심을 고양한다. ‘잼버리 K팝 콘서트’ 무대에 강제로 올라 비를 맞으며 공연하는 모습이 아닌, 일본 도쿄 시부야대로에 걸린 ‘블랙핑크’ 제니의 대형 샤넬 광고를 볼 때 가슴이 웅장해진다. K팝의 세계적 인기는 ‘헬조선’이라 자조하던 대한민국을 타자화해 쿨하고 자랑할 만한 곳으로 재인식하는 데 기여했다. K팝을 필두로 한 문화·경제 분야의 선전으로 MZ세대는 ‘한국적인 것’을 새롭게 정체화해 힙(Hip)하게 받아들이고 소비한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을지로’로 대표되는 1980~1990년대 미감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전통주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MZ세대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KOREA’를 덧붙여 대한민국의 새로운 멋을 확산하며 ‘해시태그 모으기’로 애국한다. 이쯤되면 K팝이 나라를 구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K팝이 나라를 구할 수는 있겠으나, 정치를 구할 수는 없다.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잼버리 사태’ 책임을 두고 여야가 폭탄 돌리기를 하며 파행을 거듭하고 있지만, 잼버리 K팝 콘서트 개최로 결방 ‘당했던’ 1176회 <뮤직뱅크>는 어김없이 그 다음주 금요일에 방영됐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중가요와 정치가 가장 ‘알 바 많았던’ 때는 군사독재 시절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공권력이 대중음악을 탄압한 시기였다. 오늘날 K팝과 정치의 (대체로) 분리된 관계는 역사의 진보를 상징한다. K팝은 국가의 통제와 간섭의 거리 밖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도전하며 국경을 넘어 사랑받아 왔다.

어느덧 국가상징 지위에 오른 K팝은 물론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외교적 무대에 올라 국익에 이바지했다. 국민은 K팝의 국위선양에 언제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잼버리 K팝 콘서트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가수들이 모란봉 악단이냐?’ ‘유신시대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잼버리 사태의 총체적 난국을 K팝 콘서트라는 수단으로 타개하려는 정치적 목적 아래, 출연자 섭외와 무대 설치 등 상식적인 난관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화하며 공연을 강행한 정치권력과 K팝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공권력을 총동원해 ‘군백기(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인 방탄소년단(BTS)을 소환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눈부신 활약으로 국격을 드높인 방탄소년단조차 한 정치인의 사적 견해로 오라 가라 하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진한 현타와 분노를 느꼈다. 잼버리 K팝 콘서트는 정치권력이 대중음악을 소유라도 한 듯 굴며 탄압하는 모양새로, K팝이 고양한 애국심을 허무하고 초라하게 끌어내리며 막을 닫았다. 이러한 풍경에 대해 AFP통신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냉정하게 평하기도 했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잼버리 K팝 콘서트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지난 11일 저녁, 공연이 한창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터질 듯한 함성이 귀를 메웠다. K팝을 잘 아는 관객은 일부였겠으나, 노래를 모른다고 콘서트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급작스런 스케줄이었음에도 월드투어 준비가 한창인 비활동기의 아이브, 1~2주의 짧은 컴백 기간 동안 분 단위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뉴진스와 NCT DREAM 등 간판급 K팝 가수들은 훌륭한 공연을 펼쳤다. 댄스팀 홀리뱅, 보컬 그룹 리베란테와 포르테나도 출연해 K팝의 폭넓은 매력을 선보였다.

정치권은 아슬아슬하게 본전치기는 했다고 안도하고 있지만, 무난하게 끝난 것은 콘서트이지 잼버리 사태가 아니다. 관중의 함성은 오롯이 K팝 무대를 향한 것이었다. 정치권은 착각을 멈추고, 당신들을 향한 열화와 같은 국민의 규탄과 진상규명 요구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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