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협력 1년새 ‘급발진’…군수지원협정까지 치닫나
지난 18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에게 위험은 줄어들고 기회는 커질 것”이라며 안보·경제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취임 뒤 1년간 한-일 군사협력을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국민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급발진 행태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북한 위협을 내세워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미국은 한국을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시스템의 하위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일 안보협력은 50년이 넘었는데, 줄곧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동해온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1964년 원자탄 실험에 성공하자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역내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려고 했다. 미국은 한-일 수교를 지지했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다. 이후 1967년 한국과 일본은 군 인사 교류를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 30년간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인사들이 오가고 부대 교류 행사를 정례화하는 등 초보적 군사 교류 수준에 머물렀다.
1998년 북한이 탄도미사일 ‘대포동’을 쏘자 변화가 생겼다. 한·미·일은 1999년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을 만들어 대북정책을 긴밀하게 논의하고 조정했다. 한·일은 1999년 이후 동해와 한-일 중간수역에서 수색·구조훈련(SAREX)을 격년제로 시작했다. 이 훈련은 조난 선박 발생 시 한국 해군과 일본 자위대 간의 공동 대처 능력을 키우는 인도적 목적의 비전투 훈련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북핵·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훈련을 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와 달리 속도를 조절했다. 2016년 4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한·미·일은 그해 6월 하와이 근처에서 미사일 탐지 추적 훈련을 처음 실시했고, 이후 훈련은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모두 6차례 실시됐다.
북한 핵위협이 한·미·일 군사훈련의 가속페달이었다면, 대화 분위기나 독도·과거사 문제는 브레이크였다.
2018년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풀리면서 한·미·일 훈련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과 3월 미국과 일본 정부가 한·미·일 3국 군사훈련을 한반도 수역에서 하자고 거듭 제안해왔으나 문재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훈련이 동북아의 지정학을 바꿀 ‘중대 변화’로 여겨져온데다, ‘일본 자위대와 함께 하는 훈련’에 대한 한국 사회의 거부감을 고려해서다.
해상 수색·구조 훈련 위주로 이뤄지던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확산방지구상(PSI) 해상차단훈련과 군사정보 공유, 미사일 방어경보 훈련, 대잠수함전 훈련 등으로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6월 3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미·일 미사일 경보 훈련과 미사일 탐지 추적 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한·미·일은 동해 공해상에서 지난해 9월30일 사상 최초로 대잠전 훈련을 했고, 10월6일 미사일 방어 훈련도 했다. 2주 연속 동해상 한·미·일 훈련은 처음이었다. 독도가 있어 예민한 동해에 한데 모이는 3국 훈련을 하지 않았던 이전 정부 때와 많이 다르다. 예컨대 2017년 10월 한국 해군 함정은 우리 동해상에서, 미국과 일본 함정 각 1척은 일본 근해에서 각각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해 정보를 공유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한·미·일 국방 차관보급 안보회의(DTT)를 계기로 이전까지 써온 ‘3국 안보협력’ 대신 ‘3국 군사협력’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8일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미사일 방어훈련 등 3국 훈련을 연 단위로 정례 실시하기로 했다.
앞으로 한·일이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하면 한-일 동맹이 완성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협정은 유사시 군수 분야에서 탄약을 비롯해 식량, 연료, 수송·의료 서비스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인 지소미아(GSOMIA)와 함께 한-일 군사협력을 굳히는 양대 축으로 꼽힌다. 최근 윤 대통령이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배경을, 이 협정 체결 밑돌 깔기로 보는 관측도 있다.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한국이 한·미·일 훈련의 속도와 폭을 조절해야 한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한반도 위기관리도 어려워지며, 일본의 한반도 개입 우려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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