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현재의 한미 관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 쟁점, 전략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계를 진단해 보면 두 가지 특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 당시의 미국 외교가 얼마나 전례 없이 이질적인 것이었는지 재확인된다. 대선 기간 동안 일본이나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다가도 당선되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 예의 자유 무역 기조로 복귀했던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과 트럼프는 달랐다. 북한의 독재자를 국제무대에서 직접 만나면 인권 탄압과 핵 개발을 인정해 주는 격이라며 외면해 왔던 미국 대통령들과도 트럼프는 달랐다.
특히 1952년 대선 당시 아이젠하워의 "한국에 가겠다" 발언과 1976년 대선 도전자 카터의 단계적 주한미군 철수 공약, 그리고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게파트 상원의원의 보호 무역을 위한 현대자동차 공격 정도가 미국 대선에서 한국 이슈가 직접 등장했던 경우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방위비분담금, 사드 배치 비용,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전쟁놀이 발언 등 거의 전 방위에 걸쳐 트럼프는 임기 내내 한국을 거론하였다.
둘째, 최근의 한미 관계는 한국에 어떤 성격의 정권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0년 미국 대선 결과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였을 때 당시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정권 내부에서는 한미 양국에 같은 "민주당" 정권이 공존하게 되었으므로 외교 정책의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의 중도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고 이들은 소위 "냉전 리버럴"로 불리며 북한을 포함한 대외 정책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어 왔다. 정권 초기에 나름 비판적 검토가 있었지만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시기의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북 정책으로 회귀해 버린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까지 집착했던 종전 선언 추진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시종일관 립 서비스로 일관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 윤석열 정부의 미국 우선 및 일본 화해 정책은 미국 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의 정권별 대미(對美) 정책 차이가 미국의 정권별 대한(對韓) 정책 차이보다 클 수도 있다는 점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패권 위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현재의 한미 간 공조 역시 쟁점과 논쟁을 유발하였다.
첫째, 현실적으로 북한이 쉽사리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 현시점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는 쪽에 한미 간의 방점이 찍히고 있다. 그 결정체가 2023년 4월의 워싱턴 선언이고 합의체가 새로 창설된 핵 협의 그룹이다. 정부에 따르면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핵 사용 계획 및 공유 의지는 기존의 유럽 국가들에 대한 약속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워싱턴 선언의 실체에 대한 회의감이 없지 않다. 또한 유사한 핵 협의 그룹을 계속 만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한미 간 핵무기 운영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한국의 자체 핵무장 기회가 사라졌다며 같은 보수 정권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둘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간에 삼각 협력 방식이 전격 합의되었다. 3월 한일 간의 관계 정상화 합의,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5월 히로시마 G-7 회의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국에서는 직전 정권과 근본적으로 다른 대일 외교가 추진되었고 미국에서는 한국의 전향적인 일본 입장이 크게 환영받았다.
일본의 경우, 한국 정부의 180도 달라진 태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를 통한 북한 위협 공동 대응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미일 내부 시각에서 보면 삼각 협력을 둘러싼 다양한 논점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일본 정책 드라이브를 놓고 국내적 설득과 통합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5년마다 정권이 바뀔 수 있는 한국이 내건 새 일본 정책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 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역시 바이든 정권을 뛰어넘는 미국의 대전략 수준으로 확립된 것인지 불투명하다. 트럼프 혹은 다른 공화당 후보가 집권하면 대외 정책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정치의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과 미국에서의 대외 정책 지속 가능성이 새로운 국제 관계 변수로 등장하였고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는 일본에서는 이 변수를 상수로 여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최근 한미 관계 현황: 바이든의 자국 중심주의와 경제안보
억제 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의 공조와 협력에 비해 바이든 방식의 자국 중심주의가 두드러진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한미 관계는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집권 기간 내내 통상 문제에 집중하면서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나섰던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은 과학 기술 패권 지키기에 주력하고 있다. 팬데믹과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반도체의 자국 내 생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고 특히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과학 기술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도 작용했다.
예를 들어 공화당은 국가과학재단을 위한 재원 사용에 늘 부정적이었다. 학계가 대부분 진보 성향이라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점을 의식한 탓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2022년 여름 당시 중간 선거를 앞두고 맨신 상원의원의 예상 밖 협조를 계기로 더 나은 재건 법안의 축소판인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공화당 상원과 하원 의원 중 단 한 명도 찬성하지 않았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미국 국민들보다 동맹국 국민들 사이에서 더 관심을 끌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4장에 언급된 "북미 내 최종 조립 조항"은 한국 전기차의 미국 시장 판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한국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트럼프 이후 크게 달라진 미국을 제대로 체감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520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도체 과학법의 경우, 가드레일 조항을 비롯한 제약 조건들을 통해 반도체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법안이었다. 이미 중국에 상당 부분 설비 투자를 해 온 한국 기업에게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 준 셈이다.
이 두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경제안보 정책을 대표하는 법안들이었는데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새로운 교훈을 얻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미중 경쟁이 격화된 최근 상황 역시 경제와 안보를 통합하여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군사 안보 측면에서는 중국을 압박하지만 경제 통상 차원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왔던 이전 시기 미국의 중국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 무역 책사였던 나바로는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는 주장을 처음 제기하기도 하였다.
바이든 대통령 경우에도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에 맞서는 "미국에서 다시 만들도록"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2024년 재선 도전에 임하는 중이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 경제와 안보 간 상관성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국내 정치적 연합 및 지지 세력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공화당의 경우, 중국과의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초강경파 입장을 보이는데 레이건 정당으로서 군산복합체와 가까운 전통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동시에 주요 지지층인 농업주의 중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임기 내내 중국을 비방하던 트럼프가 재선에 나선 2020년 초에 중국과 전격적인 1차 소규모 협상을 성사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민주당의 경우, 보호무역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으므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큰 거부감은 없다. 다만 당내의 신민주당 계열은 자유 무역을 선호하므로 당내 단합에 혼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반대로 민주당 내 진보 그룹은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국방 예산 급증을 저지하고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려는 미중 공통의 관심사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바이든의 중국 때리기가 미국 내에서의 아시아 혐오 범죄라는 역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우려가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선회하고 있는데 이는 내년 대선에서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크게 지지해 왔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2020년 대선과 2022년 중간 선거에서 모두 공화당 지지를 늘렸다는 선거 통계에 대해 바이든과 민주당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조지아와 애리조나 두 경합주에 사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비중이 적지 않다.
◆경제안보와 국익을 위한 한국의 전략은? 실용과 균형
트럼프가 사드 배치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요구했던 사례나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던 한국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서명식을 바이든이 크게 홍보했던 사례 모두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우리가 예전에 알던 그 미국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혹은 1971년 갑작스런 불태환 정책을 선포했던 닉슨 쇼크나 1985년 일방적인 달러 평가 절하를 강요했던 플라자 협정, 그리고 1990년대 로라 타이슨 무역 대표부가 밀어붙였던 공정 무역 규범을 통해 미국은 이미 자국 중심주의 대외 관계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이유로 우리가 애써 믿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냉전 시대 국내의 반공주의를 기초로 미국이 대외적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주도하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후 미중 경쟁 시대가 열리고 이라크 전쟁 실패 및 금융 위기까지 겪은 미국은 이제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과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을 한 번씩 거치면서 공히 미국 우선주의를 대외 관계의 전제로 인식하고 있는 중이다.
역사상 어느 나라 관계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해관계의 조화를 보인 적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달리 말해 한미 관계 역시 가치와 안보 차원에서 상당 부분 조응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이나 경제 차원에서 차이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다른 이해관계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이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중 경쟁 시대에 곧바로 중국 편을 들게 되는 것일까? 안보와 경제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먼저 보여준 현재, 우리는 안보와 경제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있을까?
결국 한국 정치와 외교의 역량과 전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우선적으로 벗어나야 할 유혹과 관행을 따져 보자.
첫째, 상대를 배제하는 양극화 시대의 국내 정치 현실을 외교 문제에까지 끌어들여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유혹에서 정치권과 국민 모두 벗어나야 한다. 대신 이미 높아진 대한민국의 국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국민 통합적인 외교 정책은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외교 정책 선택에 따른 일정 규모의 비용을 어떻게 국내적으로 합의 하에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둘째, 미국이나 중국 같은 특정 국가에 지나친 초점과 집착에 사로잡혀 온 우리 외교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구한말 시대의 아관파천이나 조선책략 등은 모두 어느 특정 국가를 따를 것인지 눈치만 살피던 당시 정치가들에게 솔깃한 사건과 제안들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두 나라만을 놓고 둘 중 하나를 정답으로 보는 경향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먼저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합의해야 자주 국방과 외교 역량이 강화된다. 보다 성숙한 한미 동맹도 이끌어낼 수 있고 미래지향적인 한중 관계도 챙길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한국 정치와 외교의 치밀한 전략으로 발전되는 날을 고대해 본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199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시청자 살해·감금·사체유기` 20대 BJ... 징역 30년 확정
- 편의점 술 사려던 미성년자에 `신분증` 요구하자... 허리춤에서 "흉기 꺼내"
- 난데없이 6층서 날아온 소주병…자동차 유리가 `우지직`
- 햄버거 가게서 밀크셰이크 마셨는데…미국서 손님 3명 사망
- 신림동 강간살인 30대男, 범행 전 성폭행기사 검색…피해자 목졸려 숨진 듯
- [트럼프 2기 시동]트럼프 파격 인사… 뉴스앵커 국방장관, 머스크 정부효율위 수장
- 거세지는 ‘얼죽신’ 돌풍… 서울 신축 품귀현상 심화
- 흘러내리는 은행 예·적금 금리… `리딩뱅크`도 가세
- 미국서 자리 굳힌 SK바이오팜, `뇌전증약` 아시아 공략 채비 마쳤다
- 한화, 군함 앞세워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