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사칭 살인예고, 잡고 보니 회사원… 쉽게 도용되는 블라인드 계정

이승엽 2023. 8. 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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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을 거친 직장인만 가입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관을 사칭해 흉기난동 예고글을 올린 남성이 붙잡혔다.

글을 올린 이는 일반 회사원이었는데, 타인의 계정을 확보해 경찰관인 척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메일 등을 통해 직장을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는 만큼 블라인드 특성상, 경찰관 계정으로 올라온 살인예고 글의 파장은 컸다.

올해 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블라인드의 '의사' 계정을 200만 원을 판매하겠다는 글이 게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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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칼부림' 예고 회사원 긴급체포
직장 인증 거쳐야 사용가능한 블라인드
계정 거래 활발... '의사' 계정은 200만원
22일 한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계정을 구매하겠다는 글이 게시돼 있다. 인터넷 캡처
"블라인드 '새 회사' 계정 2만 5,000원에 구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계정 구매 글)

인증을 거친 직장인만 가입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관을 사칭해 흉기난동 예고글을 올린 남성이 붙잡혔다. 글을 올린 이는 일반 회사원이었는데, 타인의 계정을 확보해 경찰관인 척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는 협박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를 22일 오전 서울 소재 자택에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날 블라인드 게시판에 경찰 직원 계정으로 흉기난동을 예고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라는 제목의 글에 "다들 몸사려라ㅋㅋ 다 죽여버릴꺼임"이라고 적었다.

이메일 등을 통해 직장을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는 만큼 블라인드 특성상, 경찰관 계정으로 올라온 살인예고 글의 파장은 컸다. 즉시 수사에 나선 경찰이 하루 만에 A씨를 검거하고 보니, 그는 현직 경찰관이 아니라 일반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경찰은 A씨가 해당 계정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등을 조사해 공무원자격사칭죄 적용 여부 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블라인드는 가입자만 800만 명이 넘는 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완전한 익명에 기반한 여타 커뮤니티와 달리 현직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였다. 글 작성자의 신원이 보장되고 이를 통해 해당 회사 내부 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몇 년 새 이용자 숫자가 급증, 국내 대표 커뮤니티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직장이 없는 학생이나 취업준비생 등은 블라인드에 가입할 수 없어 온라인에서 계정을 사고파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친구나 지인 등의 계정을 이용하거나, 이메일·명함 인증이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블라인드에 우회 가입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22일 기준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 블라인드 계정은 1개당 2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블라인드의 '의사' 계정을 200만 원을 판매하겠다는 글이 게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의사 같은 전문직 계정이 비싸게 팔리는데, 어떤 직장을 다니느냐에 따라 개인의 '지위'가 달라지는 세태가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2020년에는 현대자동차 직원 계정의 이용자가 자신의 '스펙'을 자랑하는 글을 올린 뒤, "어느 정도기에?"라는 댓글에 "현차(현대자동차) 사무직. 답이 됐으려나?"고 답한 적이 있었다. 이후 자아도취에 빠진 이들을 비아냥대는 밈(meme·인터넷 유행콘텐츠)이 돼 '킹차 갓무직'이라는 말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직장인 김모(33)씨는 "실제로 셀프소개팅 글을 올리면 의사 등 전문직에 더 많은 응답이 온다고 들었다"며 "일반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 수도 직장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타인을 사칭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인 만큼 관련 민간업체 내부 규정을 비롯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관을 사칭해 살인예고 글을 올린 것은 전국 15만 경찰관을 모욕한 심대한 범죄행위"라며 "데이팅 사기, 가짜뉴스 등 사칭으로 인한 범죄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제가 엄격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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