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뻥 뚫린 기재부의 깡통전세 대책

김남석 2023. 8. 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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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이상 주택에만 대출보증 금지
1.6억짜리 빌라 전세 2억에 보증
규정 바꾼 국토부 HUG와 '대조'
"같은 업무 보증기준 통일해야"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올초 범정부 합동으로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전세'에 대한 대출을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위반한 대출이 버젓이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내부 규정을 바꿔 깡통전세에 대한 대출 보증을 차단한 반면,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주택금융공사(HF·주금공)는 '전세금 2억원 이하' 에 대해서는 대출보증을 허용하는 관련 규정을 바꾸지 않았다. 두 부처 간 '칸막이 행정', '따로 규정'에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사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는 지난 달 매매가 1억6000만원인 빌라가 4000만원이나 높은 2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고, 보증을 통해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물건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A씨는 "빌라를 사들인 B씨가 2억원짜리 전세대출 계약서 작성을 요구해 거절했었다"면서 "결국 다른 중개사를 통해 전세계약서가 작성됐고 2억원의 전세대출이 실행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디지털타임스가 HF의 전세대출 보증상품 안내문을 살펴본 결과, HF는 2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넘어도 전세대출을 보증해 주고 있다. 주택 가격이나 임대인에 대한 심사 없이 임차인의 대출 상환 능력만 평가한다.

주금공 관계자도 "2억원 이하 주택은 임차인이 상환 능력만 있다면 전세가율에 상관 없이 대출보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생한 전세사기 문제는 대부분 빌라의 높은 전세가율과 임대인의 전세금 미반환 등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주금공은 임대인과 주택 가격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있다.

반면 HUG는 전셋값이 주택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때만 전세대출을 보증한다. 통상 실제 매매가와 공시가가 30% 가까이 차이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세값이 매매값을 넘는 '깡통주택'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대책에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을 90% 아래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주범으로 꼽혔던 속칭 '빌라왕' 주택의 평균 전세가율은 98%에 달했다.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2년 새 집값이 2%만 떨어져도 깡통주택이 된다.

정부가 전세가율을 낮추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요건 강화다. 전세가율이 90% 이하인 주택만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가격 산정 방식도 기존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췄다. 전세가율 90%까지 적용하면 실제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가격은 공시가격의 126%까지다.

HUG는 보증금 반환보증을 가입해야만 전세대출을 보증해 준다. 반환보증 요건만 강화해도 실제 대출 조건까지 강화되는 구조다. 하지만 HF는 전세계약서를 기준으로 임차인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전세대출을 보증해준 뒤, 임차인이 원할 경우에만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도록 했다. 반환보증 가입 요건이 강화돼도 실제 전세대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감정가 부풀리기를 통한 깡통전세 대출 역시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기관 모두 공시가격이 없는 신축빌라에 대해 감정가의 90%까지 전세대출을 보증해 준다. HUG는 감정가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지정된 감정평가법인에서만 감정을 받도록 했지만, HUG가 지정한 곳에서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감정평가사가 나오는 등 불안감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두 부처간 소통 부족에 정부 대책에 구멍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전세대출 보증 시장 점유율이 높은 HUG를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면서 똑같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HF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대부분의 빌라가격이 2억원이하라는 점에서 전세 대책의 허점을 악용한 깡통전세 대출, 전세사기가 심각하다"며 "정부기관인 두 곳이 전세대출 보증이라는 똑같은 업무를 보는 만큼 서둘러 보증기준을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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