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 정유미 "늘 떨리는 첫 촬영...편한 연기란 없다" (종합)[인터뷰]
[OSEN=유수연 기자] 영화 '잠'의 배우 정유미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22일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잠’의 배우 정유미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5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도를 높인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인해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봉준호 감독 작품 '옥자' 연출부 출신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정유미 이선균이 부부 호흡을 맞췄다. 정유미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 행동을 마주하면서 가장 신뢰하던 존재가 매일 밤 끔찍한 위협을 가하는 대상으로 변하게 된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한 아내 수진 역을 맡았다.
이날 정유미는 작품 합류 계기에 대해 "이런 장르의 대본을 처음 받아보기도 했고, 대본이 굉장히 간결했다. 드라마보다 영화는 대사가 많이 없는 편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퍼펙트한 대본이었다"라며 "재미도 굉장히 있었고, 대본을 읽고 나니 글을 쓴 감독님이 너무 궁금해졌다. 항상 연출자가 누구인지가 저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에 대본에서 느껴지는 빈 곳들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를 감독님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그렇게 감독님과 첫 미팅을 하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 하겠다고 했다"라고 회상했다.
유재선 감독과의 촬영 비하인드도 전했다. 정유미는 "원래 시나리오에서 표현하는 방식과 현장에서 감독님이 직접 하는 말씀 같은 게 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유재선 감독님은 현장과 시나리오의 차이점이 없었다. 군더더기가 없고, 첫 미팅이나 현장에서 쓸데없는 말 많이 안 하시는 점도 좋았다"라고 웃으며 "'잠'이 어떻게 보면 저예산 영화에 속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촬영 작업 또한 컴팩트하게 들어가야 했는데, 감독님께서 설명을 간결하게 표현을 해주셔서 귀에 더 들어왔다. 덕분에 연기할 때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사실 연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잔재주를 부릴 때가 있다. 그런데 '잠'에서는 그런 게 덜 했다. 택배를 뜯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한 번에 '착!'하고 뜯어달라'는 디테일까지 잡아 주셨다. 덕분에 연기할 때 편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감독님이 어떤 걸 가져가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눈치도 챙길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별칭을 얻게된 이번 연기에 대해 "그 표현을 칸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처음 들었는데, 그렇게 표현해주실 걸 알았으면 더 광기 있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연기할 때는 그런걸 염두하지 않고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대로, 감독님이 주시는 대로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몇년 사이에 '맑은 눈의 광인'이 유행어처럼 나왔더라. 그 말을 듣고 나니 개인적으로 아쉽다"라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이어 "극 중 스스로 보면서도 놀란 얼굴이 많았다. 사실 저는 제 얼굴을 연기할 때는 못보지 않나. 원래 현장에서 모니터를 감독님이 보라고 하지 않는 이상 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놀랄 때가 조금 있긴 했다"라며 "현장에서 로우샷이 굉장히 많았다. 사실 되게 싫었다. 현장에서는 ‘왜 자꾸 밑에서 찍냐. 콧구멍만 보이지 않냐’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를 위해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극이 3장으로 나뉘면서 캐릭터가 조금씩 변하는데, 미리 감독님과 이야기 한 부분은 없고 그날 그날 찍어야 할 장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캐릭터가 워낙 일상적인 옷을 입고 있어서 뭐가 크게 달라지는지 몰랐지만, 미술 팀 등이 맞춰놓은 공간이 바뀌면 거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별히 지시를 해주지 않아도 장마다 셋업이 계속 바뀌었다. 그런 공간에 들어가면 감독님과 제작진이 어떤 것을 그려나가고 싶어하는 지를 눈치를 채고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행',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엄마 역할을 맡게 된 정유미는 "임산부 연기를 할 때 좋은 점이 있긴 하다. 쉬면서 음료수 같은 걸 마실 때 앉아서 배에 걸쳐 놓으면 좋다"라고 웃으며 "그래도 예전에 한 번 해봤다고, 임산부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이어 여성에 대한 삶과 고민을 담은 캐릭터를 맡게 된 점에 대해서는 "(그것과 관련해) 고민점을 두고 연기를 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저 그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 뿐"이라며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정말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 이야기를 쓴 사람이 감독님이고, 거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실 감독님이 '이렇게 연기해 주세요'라고 해줄 때가 제일 좋다. 그렇게 듣고 나면 오히려 감정 표현이 더 자유로워진다. 해석에 있어 제 생각이 너무 들어가 버리면 컴팩트한 작업에서 부담을 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많이 여쭤 가보면서 촬영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극중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이선균의 언급도 잊지 않았다. 정유미와 이선균은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 등의 영화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만남이다. 그는 "저희 둘이 같이 호흡을 맞춘지 십년이 됐더라. 그간 홍상수 감독님 작품으로 작업은 세 번을 했지만 회차가 많지는 않았다. 다만 대사량이나 테이크 수 등 밀도는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저희 나름대로 훈련이 된 게 있어서인지, 어색하지 않았다"라며 "10년 만에 만난 것도 그렇고, 첫 촬영은 이상하게 늘 떨린다. 그런데 오빠는 그런 게 없더라. 그 전에 연인 역할이든, 저를 쫓아다니는 역할이든 간에, 전에 호흡을 맞췄던 편안함이 남아있었던 거 같다. 만약 그런 작업이 없었더라면, 아예 처음 만나는 배우와 호흡을 맞췄더라면 어색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라며 케미를 자랑했다.
2003년 영화 ‘사랑하는 소녀’로 데뷔한 정유미는 ‘사랑니’,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 ‘차우’, ‘10억’, ‘내 깡패 같은 애인’, ‘카페 느와르’, ‘도가니’, ‘부산행’, ‘염력’, ‘82년생 김지영’ 등으로 스크린을 장악했다. 특히 ‘케세라세라’,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연애의 발견’ 등 로코 드라마에서의 활약은 물론, '윤식당', '서진이네'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러블리한 매력을 뽐내며 '윰블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윰블리'라는 별명에 대해 그는 "여기서 '윰블리'가 언급될지는 몰랐다"라고 웃으며 "갑자기 불리게 된 별명인 것 같다. 물론 친한 분들은 직접 저에게 '윰블리'라고 불러주시기도 하고, 재밌어서 즐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윰블리로 불리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나'라는 질문에 "그렇다면 일을 그만두겠다. 거기서 끝내겠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다수의 예능 활동에 대한 속내도 털어놨다. 정유미는 "이제는 예능에 나온 지 6년이나 되어서 어색하지 않겠지만, 저를 어렸을 때부터 보신 분들이나 저나, 생활 밀착형 예능에 나온 걸 보고 많이들 당황하신 거로 알고 있다"라며 "('윤식당') 팀과 몇 년에 한 번씩 하다 보니 그 안에 정이 생기기도 했고, 타이밍도 잘 맞았다. 작년 11월 말에서 초, 멕시코에 갔을 때 서준이랑 서진이 오빠랑 ‘우리 벌써 6년이나 됐다고?’ 한 적이 있다. 저희도 이야기하면서 깜짝 놀랐다. 잠깐 촬영하고 오는 것이긴 하지만, 시리즈물로 본다면 드라마도 그렇게 찍어본 적이 없다. 그런 시리즈 포맷을 가진 예능은 없다 보니 어느 면에서는 '작품'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배우로서 이렇게 예능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재밌게 하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함이 크다"라며 "그리고 예능이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런 시간이 주는 힐링과 자유로움이 있다. 예능을 통해 저라는 사람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연기하는 데도 모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도 하는데, 원래 했던 연기는 왜 못하겠어?'라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음악 활동 역시 예능 출연과 같은 맥락이라고. 앞서 정유미는 지난 2016년에는 성시경과 '안드로메다' 콜라보레이션을, 지난 2021년 콜드와 듀엣곡 '충분해'를 발매했다. 그는 "성시경 오빠와 작업은 평소에 성시경 씨의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당시 음악 감독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함께 할래?'라고 제안을 주셔서 너무 놀랐다. 그것도 저에겐 도전이었다. 그분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1번으로 했다. (녹음하며) 저에게 그런 소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다음에 혹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리를 써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올해로 '20년 차'를 맞이한 '배우' 정유미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라는 질문에 "편한 건 사실 없다.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뿐이지, 어떤 캐릭터가 편하거나 나에게는 뭐가 더 맞다고 생각하면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업할 때마다 '좋은 배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한 작품의 작업 안에서도 연기적인 기술이 필요할 때도 있고, 감정적인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다"라며 "다만 개인적으로는 언젠가부터 기술을 들키지 않고 연기하는 걸 지향하게 된 것 같다. 촬영하다 보면, 기술적으로 합을 맞춰야 하는 장면도 있고 그 안에서 감정이 필요한 장면도 있었다. 실제 상황이라면 감정을 쏟는 게 훨씬 편한데, 구도도 맞춰야 하고 하니까 내 감정만 온전히 보여줄 수 없다. 기술적인 면 안에서 나오는 다른 모습이 재미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정유미는 "어렸을 때는 캐릭터가 이러니까, 온전히 감정적으로 임했던 적이 있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니 힘들더라. 왜냐하면 나는 그 인물이 아니니 그렇게 계속 살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그런 경험도 있고, 여러 경험이 쌓다 보니 생각이 바뀐 것 같다.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맞게 제가 움직이면서 작업을 하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작품 선택 기준에 대해서는 "그전에는 선택받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저에게 시나리오를 주셔야 선택을 할 수 입장이긴 하지만, 제일 큰 요인은 글과 감독이다. 글만 좋다고 해서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글이 좋으면 감독님을 뵙는 것이고, 감독님과 첫 미팅 때가 좋아야 비로소 작품을 하게 된다"라며 "첫 만남이 별로면 두세 번 만난다고 달라지진 않더라. 저도 좋은 인상을 드리기야 하겠지만, 처음 만났는데 뭔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다. 글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잘되는 법은 아니지 않나. 글은 좋았는데 나와 안 맞겠다 싶은 분들도 계셨다. 이제는 작업을 여러 편 해오다 보니 보니까 첫 만남부터 알겠더라"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그는 "유재선 감독님과 다음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이다음이 굉장히 기대된다. 원래 계셨던 감독분들도 잘 찍으시지만, 이렇게 새로운 감독님들이 나와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문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고, '잠' 역시 관객들이 찾아와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라고 전했다.
정유미, 이선균 주연의 영화 '잠'은 내달 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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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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