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플레이션감축법과 한미일 삼각협력의 미래

한겨레 2023. 8. 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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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 18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 1년을 맞았다. 백악관은 그간 1100억달러 규모 청정에너지 관련 신규 투자가 발표되고 17만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자랑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15일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향후 신뢰할 만한 나라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북미 투자도 이어졌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수출이 늘고 현대·기아 전기차의 올해 상반기 미국 내 판매량 증가율은 최고치인 11.4%를 기록해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유지했다.

그간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던가. 아니다. 옐런의 기고 다음날 같은 신문은 인플레감축법이 새로운 정치보조금이라며 이것이 10년간 지속된다면 투자 왜곡과 생산성 감소 등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플레감축법이 드러낸 미국 우선주의에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은 ‘배신’을 토로하고 프랑스 대통령은 ‘서방을 분열시킨다’고 반발했다. 이렇듯 동맹과 우방의 반발에 미국은 부랴부랴 인플레감축법을 수술대에 올렸다. 한국 양극재의 대미 수출 증가는 그 핵심 소재를 부품이 아닌 핵심 광물에 포함시킨 분투의 산물이다. 국내산 전기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 증가도 예외 조항을 추가시켜 상용(리스용 등) 전기차 수출을 늘려 쟁취했다.

여전히 과제는 산적해 있다. 포드는 인플레감축법을 우회해 중국 배터리 제조사 시에이티엘(CATL)과 미국 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하고 바이든 정부가 이를 승인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취하자 미 하원은 인플레감축법 수혜 자격 여부 심의에 착수했다. 인플레감축법의 수혜를 원천봉쇄할 ‘해외우려집단’을 명확히 정의해달라는 한국 쪽 요구에는 아직 답이 없다.

이러니 오바마 정부의 에너지 특사였던 데이비드 골드윈은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기고한 인플레감축법 1년 평가보고서에서 동맹들의 보조금 경쟁을 부추겨 긴장을 자초했다며 우방과의 조화를 주문한다. 같은 기관의 또 다른 보고서도 미국이 아르헨티나(리튬), 인도네시아(니켈) 등의 배터리 핵심 소재 대국과 경제적 이익과 형평성을 실감하도록 협력하라고 조언한다.

지난 1년 미국은 우방과 인플레감축법에 기반한 신뢰가치사슬(TVC) 구축에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관건은 미국이 복수의 이해관계자 사이 ‘신뢰’라는 추상적 개념을 ‘공동 이익’이라는 구체적 개념으로 가시화할 수 있느냐다. 전기차 배터리의 신뢰가치사슬에는 국내외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지역사회, 환경단체 등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더욱이 반도체와 정반대로 이 분야의 압도적 강자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그로 인해 이들 간의 이해관계 조정이 원만히 되더라도 중국과의 디리스킹(위험억제)이 가능할지, 비용은 또 얼마가 될지 불투명하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세 나라는 안보에서 경제, 기술, 개발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협력의 제도화에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쿼드(Quad), 오커스(AUKUS)에 이어 ‘보호주의 진영화’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외교적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삼국 협력의 ‘원칙’과 ‘정신’에 가득한 외교적 수사의 가벼움이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느낌은 필자만의 것일까. 규범 기반 자유무역? 미국의 인플레감축법은 국제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보호무역의 아이콘이다. 인권 수호? 일본은 인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한 흑역사 지우기에 급급하다. 여성의 사회참여?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폐기 수순이다. 경제적 강요?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 통제는 모두 잊기로 했나. 자유와 민주주의? 2023년 미국과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각각 45위·68위로, 세계 1위·3위 경제대국 지위가 민망한 수준이다. 한국은 47위로 극일했으니 기쁜가? 2019년 41위에서 하락한 순위다.

한·미·일 세 나라가 절박한 공통 위협에 직면해 협력의 제도화라는 장대한 여정에 나서고자 한다면 가치와 규범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삼국 협력의 비용을 상쇄하는 편익이 분명하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가. 일본 정부는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을 과거사 직시로 이어갈 의지가 있는가. 미국 정부는 인플레감축법에서의 학습을 토대로 우방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협력의 불가역성은 희망에서 현실이 된다. 선거로 언제든 2023년 8월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릴 수 있는 세 나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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