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낡은 일본 골프장과 잃어버린 30년

김경민 2023. 8. 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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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이에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한 대기업 임원은 일본인들의 건물 관리능력에서 장인정신을 볼 수 있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를 골프장으로 들었다.

경지에 이른 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잃어버린 30년'을 살아내기 위한 어쩌면 당연한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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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이에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한 대기업 임원은 일본인들의 건물 관리능력에서 장인정신을 볼 수 있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를 골프장으로 들었다.

"일본에는 2200개의 골프장이 있고, 도쿄 인근에만 1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버블경제 시기였던 1980~1990년대 지었어요. 그런데 보세요.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한국이었으면 애초에 다 재개발했겠죠? 있는 걸 닦고, 조이고, 고쳐서 최대한 오래 쓰는 게 일본 사람들이 사는 법이에요."

겉으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을 말하면서도, 왠지 그의 말투에선 '아직도 이런 걸 쓰고 있다'는 반어적 뉘앙스도 살짝 풍겼다.

최근 일본을 찾는 지인들도 전통 있는 노포가 많아 좋다면서도 '옛날의 그 세련되고 깔끔한 일본이 아니다' '몇 년 전과 똑같아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서울이 많이 따라잡았다' 식의 저평가하는 인상을 전하기도 했다.

경지에 이른 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잃어버린 30년'을 살아내기 위한 어쩌면 당연한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근 30년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새로운 것보다는 있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사실 지난 30년은 무턱대고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2200개의 골프장은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완벽하게 보존된 옛것의, 이미 현대적이었던 모습들은 '아니 도대체 그때 얼마나 잘살았던 거야' 하며 잘나갔던 일본의 전성기를 상상하게 한다.

버블 붕괴 후 30년을 버텨낸 일본에서 이제 "미래가 밝다"는 말이 나온다. 도산 공포에 질려 현상유지 경영에 방점이 찍혔던 일본 기업들은 세대교체되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값싼 중국으로 떠났던 일본 기업들이 자국으로 컴백했다. 일본의 올해 봄철 평균 임금인상률은 1993년 이후 최고인 4%(후생노동성 조사 3.60%·게이단렌 조사 3.99%)에 육박했다. 모든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은 두자릿수 이상 증가하는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웠다.

2·4분기 일본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5% 증가했다. 한국(0.6%)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1·4분기에도 일본은 0.9% 성장해 한국(0.3%)을 앞섰다. 같은 추세라면 일본의 연간 환산 성장률은 6.0%로 25년 만에 한국을 역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최대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잃어버린 30년의 끝을 맞이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일본 경제가 멍에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금융과 실물경기 전반에 온기가 돌면서 일본 경제는 재도약을 위한 발을 뗐다. 과거를 추억하며 유지·보수에 급급했던 일본의 낡은 골프장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을 날도 멀지 않았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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