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이 MLB 첫 그랜드슬램으로 보여준 정신… 멱살 잡고 끌고 갔다, 팀 대변인 ‘슈퍼스타’ 대접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샌디에이고는 20일(한국시간) 애리조나와 더블헤더 두 경기를 모두 내주며 암울한 위치에 몰렸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반드시 다 잡아야 했던, 못해도 1승은 해야 했던 이 더블헤더에서 공‧수 모두 침묵하며 결국 두 판을 다 줬다.
샌디에이고는 현재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를 달리고 있다. 지구 선두 LA 다저스는 이제 뒤통수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망갔다. 지구 우승보다는 와일드카드 세 자리를 노리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와일드카드 레이스도 썩 긍정적이지 않다. 현재 내셔널리그는 필라델피아, 시카고 컵스, 샌프란시스코가 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위로도 애리조나, 신시내티, 마이애미가 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샌디에이고가 고민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한 샌디에이고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대권, 그리고 더 나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하지만 올해 5할 승률도 못한 채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니 시장에서 ‘판매자’로 나서야할지를 고민하는 신세가 됐다.
시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로 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승률도 썩 좋지 않다. 그 결과 21일까지 59승66패로 5할 승률까지 7개가 모자랐다. 20일 애리조나와 더블헤더를 싹 다 지면서 경기차는 더 벌어졌다. 현지 언론에서 ‘재앙의 더블헤더’로 부를 정도로 타격이 컸다. 하지만 아직 샌디에이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하성(28)의 몸짓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하성은 22일(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와 경기에 선발 1번 2루수로 나가 4타수 2안타(1홈런) 4타점 2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최근 다소간 하락세에 있던 시즌 타율은 종전 0.278에서 0.280으로 소폭 오르며 2할8푼대를 회복했다.
특히 팀이 정신을 차리는 계기를 경기 초반 마련하며 분위기를 살렸다. 1회에는 리드오프 2루타를 치고 나가 득점까지 올렸고, 2회에는 결정적인 만루 홈런으로 팀 기선 제압에 앞장서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침체됐던 팀 분위기를 김하성이 멱살 잡고 살린 셈이다. 이날 경기 후 현지 언론에서 김하성을 집중 조명한 건 다 이유가 있다.
1회부터 힘을 냈다. 이날 마이애미 선발은 라이언 웨더스. 샌디에이고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샌디에이고 팬들과 선수들에게도 친숙한 옛 동료였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쁜 김하성은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2B-1S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4구째 한가운데 몰린 96.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익수 옆에 떨어지는 안타를 치고 나갔다.
우익수보다는 선상 쪽에 근접한 타구였고 타구를 바라본 김하성은 지체 없이 2루까지 달리기로 결정했다. 김하성의 헬멧은 어김없이 벗겨졌고, 항상 그랬듯이 전력으로 2루에 들어갔다. 그리고 양손을 돌리는 특유의 세리머니로 더그아웃 분위기까지 살렸다.
이번 시리즈는 김하성의 바블헤드를 나눠주는 특별 이벤트가 있다. 이 바블헤드는 김하성의 평소 플레이를 잘 표현했다. 헬멧이 벗겨질 정도의 혼신의 주루를 하는 장면이 잘 묘사됐다. 헬멧을 탈부착식으로 제작해 현지 팬들의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역 유력 언론인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이에 대해 ‘김하성이 바블헤드처럼 활약했다’고 평가했다.
김하성은 이후 폭풍 주루로 팀 득점에 공헌했다. 1사 1,2루에서 1루 주자 타티스 주니어와 스타트를 끊어 이중도루에 성공했다. 김하성의 시즌 28번째 도루였다. 김하성의 스타트가 워낙 좋아 포수가 3루에 공을 던지지도 못할 정도였다. 타티스 주니어도 김하성 덕에 여유 있게 2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어 마차도가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선취점이 올라갔다.
1-0으로 앞선 2회에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만루 홈런을 치며 펫코파크를 달아오르게 했다. 1사 이후 볼넷을 연거푸 골라 1사 만루가 된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하성은 웨더스의 3구째 포심패스트볼을 다시 잡아 당겨 좌측 담장을 넘기는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최희섭 추신수 강정호 최지만에 이어 만루 홈런을 친 역대 5번째 한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김하성은 이후 안타를 치지는 못했으나 이미 2루타, 만루 홈런, 도루로 자기 몫은 다 한 상태였다. 샌디에이고는 안정적인 마운드의 힘으로 김하성이 만든 점수를 지켰다. 그렇게 6-2로 이기고 한숨을 돌렸다.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샌디에이고보다 위에 있는 마이애미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김하성은 경기 후 영웅이 됐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각오를 밝혀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김하성은 경기 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팀으로서 우리는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처럼 임할 것이다. 분명히 모든 경기가 중요하다. 그것이 현시점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고 팀의 의지를 대변했다. 마치 팀의 리더로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개인적인 시즌 막판 목표에 대해서도 “타자들의 방망이가 한 번 뜨거워지면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두 달 동안 내 방망이는 뜨거웠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김하성의 영웅적인 활약에 밥 멜빈 샌디에이고 감독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멜빈 감독은 “때때로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김하성)가 경기하는 방식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항상 우리에게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면서 ”그로부터 오는 많은 에너지가 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MLB.com 또한 ‘샌디에이고가 불꽃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전달한 선수가 종종 김하성이었다’면서 ‘현시점에서 2023년 김하성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없이 그들이 시즌 어디에 있을지를 생각해보라. 2023년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의 2루수로서 아마도 최고의 시즌을 꾸려가며 스타가 되고 있다. 만약 이 팀이 이 라인업에 있는 나머지 타자들의 공격적인 기록을 가지고도 김하성의 각성 시즌(breakout season)을 낭비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호평 릴레이에 합류했다.
한편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역사에서 진기록을 쓴 하루로도 기억될 전망이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의 제프 샌더스에 따르면 김하성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 만루 홈런, 2루타, 도루를 모두 기록한 선수로 기록됐다. 샌더스 기자는 이를 '김하성의 전설(legend)'이라고 칭하면서 역사적인 날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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