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겸장에서 단신 슈터까지…, 그때 그 시절 3번

김종수 2023. 8.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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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토리⑪] 프로 초창기 빛났던 스윙맨들

 

농구에서 가장 돋보이는 포지션은 가드와 빅맨이다. '가드는 팬들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웃게 한다'는 농구 격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 동료들을 이끌며 앞선을 지휘하는 센스 넘치는 가드와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빅맨은 항상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이를 입증하듯 역대급 강팀에는 출중한 가드와 빅맨이 당연스레 존재했다.


하지만 농구는 각 포지션별로 역할 분담이 중요한 스포츠다. 아무리 가드와 빅맨이 펄펄 날아도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포워드진이 부실하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내외곽에서 스윙맨이 함께 해주며 전체적 균형이 제대로 잡힐 때 해당팀은 비로소 완전체가 된다. 밸런스의 스포츠 농구에서 3번 포지션은 또 다른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 농구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사이즈와 기량을 갖춘 대형 스윙맨들의 탄생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유형의 선수는 극히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빅맨급 신장에 잘 뛰고 잘 달리고 슈팅력까지 장착한 포워드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문성곤(30‧195.6cm), 송교창(27‧201.3cm), 안영준(28‧194.1cm), 양홍석(26‧195cm), 최준용(29‧200.2cm) 등이 대표적으로 하나같이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 핵심 자원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이다.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안영준이 190cm대 중반이다. 호주 일라와라 호크스의 이현중(23‧202cm)과 곤자가 대학교의 여준석(21‧203cm) 등도 경쟁력 있는 사이즈를 앞세워 NBA를 노리고 있다.


장신 선수가 부족한 국내 현실상 어지간한 빅맨과도 신장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지라 상황에 따라서는 3~4번을 오가기도 한다. 안영준같이 2번을 겸하는 선수도 있으며 최준용같은 경우 포인트가드 역할도 어느 정도 소화할 정도로 다재다능함이 돋보인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이 아닌 평균 이상의 운동능력에 기술까지 겸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최근같이 스윙맨들이 맹위를 떨치던 시대가 과거에도 있었다. 다름아닌 프로 초창기다. 플레이 스타일, 선수 개인의 색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신장의 차이다. 당시는 190cm안팎의 선수가 많았다. 사이즈상 어쩔 수 없이 2번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180cm대 초반의 포워드도 적지않게 존재했다. 송교창, 최준용, 이현중, 여준석 등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프로 초창기 리그에서 가장 돋보였던 포워드로는 ‘람보 슈터’ 문경은(52·190cm), '사마귀 슈터' 김영만(51·193cm),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49·190cm), ‘양갱’ 양경민(51·193cm) 등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소속팀에서 주포 혹은 핵심전력으로 활약하며 없어서는 안될 존재감을 뽐냈다. 우지원(50·191cm) 같은 경우 이들보다 공헌도는 떨어졌을지 몰라도 인기만큼은 당대 탑급이었다.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던 이상민에 그나마 비빌 수 있는 유일한 스타로 꼽혔다.


문경은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슈퍼스타 재목으로 꼽혔다. 슈터로서 좋은 체격조건(당시 기준)에 리버스 백덩크가 가능할 정도로 탄력이 좋아 매 경기 관중들을 흥분케 했다.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계보를 잇는 대형슈터로 이름을 날렸고 실제로도 임팩트와 커리어를 동시에 남기며 레전드 슈터로 남아있다.

 

문경은이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오랜시간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부분도 크다. 정인교, 김상식, 조성원, 김병철 등 만만치 않은 슈터 경쟁자들이 동시대에 존재했지만 하나같이 사이즈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컸던지라 국가대표팀에서 주로 중용된 것은 문경은이었다. 맨발 신장이 190cm가 되지 않았던 문경은이 사이즈가 장점으로 꼽혔던 것을 보면 당시로부터 얼마나 선수들의 사이즈업이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다.

 


단기 임팩트로는 단연 김영만이 첫손에 꼽힌다. 부상으로 전성기가 오래가지는 못했으나 부산 기아(현 현대모비스) 시절 공수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뽐내며 '스몰포워드의 교과서'로 불렸다. 빼어난 일대일 능력을 바탕으로 마크맨을 따돌리고 미들라인에서 다득점을 올리는데 능했으며 수비시에는 매치업 상대를 꽁꽁 묶어버리는 자물쇠 수비를 자랑했다.


문경은, 우지원 등 당시 날고기는 포워드들도 김영만과 매치업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약도가 뚝 떨어지기 일쑤였다. 전성기만 놓고 봤을 때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공수겸장 3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만보다는 활약이 덜 했지만 양경민 또한 지도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스윙맨으로 꼽혔다.


수비 능력을 갖춘 슈터 이른바 ‘3&D’자원은 흔할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귀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슈터들은 하나같이 수비에서의 약점을 지적받는다. 아마 시절부터 주득점원 역할을 하며 공격에서만 익숙한 이유가 큰데 그런 점에서 김영만과 함께 중앙대 쌍룡으로 불렸던 양경민은 어느 시대에 가져다 놓아도 환영받을만한 유형의 선수다.


슛이 터지지 않는 날도 수비로 공헌할 수 있었으며 패싱센스도 좋아 다양한 조합과 공존이 가능했다. 전성기 시절 김영만과 쇼다운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평가받기도 했다. 두고두고 회자 될 실속파 스윙맨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고로 인해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추승균은 최강의 2인자, 살림꾼 등으로 불렸다. 그의 선수 생활은 이른바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그 최고의 3점슈터 문경은, 완벽했던 5~6년의 김영만과 비교해 다소 덜 요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산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는 가장 화려한 현역을 보낸 선수가 바로 추승균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추승균은 시간이 갈수록 진화했다. 이상민, 조성원과 '이조추'트리오로 명성을 누리던 시절의 그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수비 등 궂은일에 전념하며 팀의 밸런스를 잡아줬다. 빼어난 3점슈터지만 신장문제로 수비에서 약점이 있던 조성원이 마음 놓고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상민의 '바꿔 막기'와 더불어 추승균의 헌신적 수비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추승균이 공격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팀 공격이 잘 풀리지 않거나 수비가 이상민, 조성원에게 집중됐다 싶으면 특유의 명품 미들슛을 앞세워 '또 다른 에이스'모드를 자랑했다. 이후 고참이 된 추승균은 포스트업은 물론 어시스트 능력까지 끌어올리며 후배들을 이끌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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