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만 다시 담근 4대 그룹?…반쪽짜리 전경련 재출범
회비 납부 및 회장단 참여 등 적극 활동은 피할 듯
거액 출연, 이사회 승인 등 절차상 당분간 어려울 듯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꾼 가운데, 4대 그룹의 복귀가 6년여 만에 이뤄졌다. 과거 재계를 대표하던 경제단체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첫 걸음이지만 재계에선 반쪽짜리 재출범이라는 평가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 삼성증권은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고, 그나마 합류하는 4대 그룹 계열사 역시 회장단 합류나 회비 납부와 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경련은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한경협으로의 명칭 변경안을 의결하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공식 선임했다. 이날 총회로 한경협이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함에 따라,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을 탈퇴했지만 한경연 회원사로는 남아있던 4대 그룹 일부 계열사가 한경협 회원으로 이관되게 됐다. 절차상으로는 4대 그룹이 약 6년여 만에 한경협으로 복귀하게 된 셈이다.
한경협으로의 회원 승계 대상은 삼성 5곳(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SK 4곳(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 2곳(LG·LG전자)이다. 이 가운데 삼성증권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권고와 이사회 논의 등을 통해 복귀를 거부하기로 했다.
한경협이 '4대 그룹 복귀'라는 외형적 목표는 달성했지만 실리적인 측면에선 복귀 효과를 기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들 그룹이 따가운 여론 등을 이유로 회비 납부와 회장단 참여 등 적극적인 활동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 검토가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성명에서 "4대 그룹이 아무런 쇄신 없는 전경련에 재가입할 경우 정경유착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삼성 준감위 논의에 대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재벌공화국으로의 복귀'를 공개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복귀를 택한 4대 그룹의 한경협 내 보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다시 복귀한 4대 그룹의 한경협 회비 납부에 대해선 아직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과거 전경련 당시 삼성은 100억원 안팎, SK·현대차·LG 등은 50억원 이상 매년 출연해왔다. 탈퇴 직전인 2015년 4대 그룹이 전경련에 낸 회비는 전체(492억원) 중 71% 수준에 달했다. 4대 그룹의 탈퇴 후 전경련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이에 직원 수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재계 맏형' 위상은 찾았지만 곳간은 여전히 부족?
재계에선 한경협이 전경련 시절처럼 활발한 활동을 위해서는 4대 그룹의 출연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4대 그룹이 예전처럼 출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 그룹 계열사의 이사회에서 기금 출연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어서다.
삼성의 경우 준감위가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18일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행위가 지속된다면 즉시 탈퇴할 것을 비롯해 운영 및 회계와 관련한 투명성 확보 방안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거친 후에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권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위원장은 세부 권고안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계에선 일정 금액 이상의 출연에 대해선 준감위의 검토와 승인을 받을 것을 권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기금 혹은 회비 납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 그룹이 과거 전경련을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던 이력이 드러나며 국민적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출연이 아니더라도 회비 납부 역시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다. 한경협 회비로 토대로 한경협이 자체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성격에 따라 자칫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은 당분간 한경협 회원사에 이름을 올리는 수준에서 한경협의 싱크탱크로의 변화 과정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며 "회비 납부도 적잖은 난관이 예상되는 가운데 전처럼 수십억원씩 출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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