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기초과학 투자, 사회·경제적 가치 크다…남는장사"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김인한 기자 2023. 8.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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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기초과학' 속도전 중요성, 연구계 신뢰 필요 강조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한국과학기자협회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더 오래 걸립니다. 틈새를 메워가는 작업을 통해 기초과학에서 '속도'를 더 내야합니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과 인터뷰에서 속도전의 필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노 원장은 "기업 제품은 다른 곳보다 6개월 늦게 출시해도 시장에서 팔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초과학은 누군가 먼저 발표하면 가치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실험실 구축 과정에서 실험 장비를 심의하고 구매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외국에 비해 6개월에서 1년이 넘게 소요된다"며 "뒤집어 말하면 그 기간 만큼 연구에 뒤처진다는 의미로, 장비 구매 시스템 등 근본적 연구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연구기관' 獨막스플랑크 신뢰 기반 시스템 '굳건'

노 원장은 올해 한국-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 2023)에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을 방문해 이들의 시스템을 살폈다. 특히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면서 기술 사업화 등으로 수익을 낼 때 기관-개인 간 이해 충돌이 있는지 찾아봤다.

노 원장은 "독일 연구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 창업과 기술 이전에 대한 경험이 많고, 이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며 "이 때문에 이해 충돌 부분에서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조사해봐도 그 장치가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독일에 와서 연구자, 행정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알게 된 건 이들이 별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연구자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공적인 자원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독일 막스플랑크는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긴다'는 말이 있더라"라며 "과학자들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 신뢰하는 문화가 연구와 사업화 모든 부분에서 적용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 연구 시스템은 연구자에게 연구 주제부터 예산, 장비 구입, 사업화까지 자율성을 주되 책임도 연구자가 지도록 하는 체계가 저변에 갖춰져 있다는 의미다.

노 원장은 "과학기술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청렴도가 이미 10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올라갔다"며 "우리도 (막스플랑크 식의) 과감한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 기초과학, 경제·사회적 가치 커…남는 장사"
그는 "IBS가 12년이 됐고,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바이오 분야는 일부 사업화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를 사업화 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교하게 다듬어가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부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업을 장려할 필요는 아직 없다"면서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기초연구가 제품화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이를 스핀오프(분사)해 창업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맥락에서 그는 201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스테판 헬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화학연구소 박사 사례를 언급했다. 헬 박사는 연구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활용해 현미경 개발·제조 기업 '아베리어'를 창업했다.

노 원장은 "스테판 헬 박사가 실제 현미경을 개발해 사업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연구에 뛰어 들었다면 단순히 기존 현미경들의 성능을 조금 개선하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며 "남들이 이론적,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파고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헬 박사의 연구 성과는 그의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더 크다"며 "이 기술이 응용된 기술이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적으로 부를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기초과학의 매력이자,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남는 장사'인 이유"라고 강조했다.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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