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곳곳서 대형산불...‘와인’ 맛도 변한다
휘발성 페놀 보다 티오페놀이 탄 맛 원인 확인
기후변화로 극도로 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그리스 등 세계 곳곳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늘은 회색빛으로 변했고, 구름 떼 같은 연기가 산을 집어삼킬 듯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대형 산불에서 발생하는 ‘연기 오염(smoke taint)’은 포도 농장에도 영향을 미쳐, 포도로 만든 와인에선 탄 맛이 난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불 연기에 노출된 포도가 이처럼 불쾌한 맛이 나는 이유는 기존에 알려진 휘발성 페놀보다는 ‘티오페놀’이라는 물질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비교적 최근 밝혀졌다.
토머스 콜린스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와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푸드 케미스트리 어드밴스드’에 산불 연기에 오염된 포도를 사용해 만든 와인의 맛에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합물 중 ‘티오페놀’이라는 물질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연구진은 산불 연기로 인해 포도 농장에 영향을 미쳐, 와인에 탄 맛이 나게하는 특정 화합물을 찾아내려고 포도를 연기에 노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미 오리건주 먼로에 있는 우드홀 포도밭에서 온실을 만들고 길이 5.33m, 너비 1.37m, 높이 2.29m인 비계(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케이지를 프랑스 부르고뉴 대표 레드 품종인 피노누아 포도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3곳에 설치했다.
연구진은 온실에서 산불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차갑게 바짝 건조시킨 보리를 연료로 써서 불을 붙였다. 3일간 세 차례에 걸쳐 총 6시간 동안 포도나무를 연기에 노출시켰다.
연구진은 인위적으로 연기에 노출된 포도를 활용해 피노누아 제조 방식에 따라 와인을 만들고 750㎖ 용량의 와인병에 4도 안팎의 온도로 보관했다.
연구팀이 이렇게 만든 와인에서 샘플을 얻어 분석한 결과 연기에 노출된 포도로 생산된 와인에선 화합물인 티오페놀 성분이 연기에 노출되지 않은 와인보다 더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티오페놀은 조리한 고기와 생선에서 흔히 검출되는데 주로 진한 국물맛, 고기 맛을 낸다. 반면 일반적으로 와인과 알코올 음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성분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연기에 노출된 포도로 만든 와인에 포함된 티오페놀이 탄 맛, 재 맛이 나는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산불 연기에 노출된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만들면 향과 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전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과학자들과 와인업자들은 이전까지 산불에 노출된 포도로 만든 와인의 맛과 향이 다른 이유가 휘발성 페놀로 알려진 화합물에서 비롯했다고 이해해왔다.
산불 연기에 포함된 휘발성 페놀은 포도 껍질을 뚫고 포도에 쌓이고 이것이 당과 결합해 페놀성 디글리코사이드(phenolic diglycosides)라고 하는 비휘발성 화합물을 형성한다. 이 물질이 와인병 속에 들어있다가 포도주를 음미할 때 탄 맛 등 불쾌한 맛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페놀의 영향은 맛에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논문의 1저자인 엘리자베스 토마시노 오리건대 교수는 “휘발성 페놀은 탄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제한적이며, 티오페놀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연기에 노출된 포도를 통해 만들어진 와인에서 발생한 티오페놀 성분의 발견은 와인 제조 과정에서 이를 잠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학적 마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대규모 산불을 유발할 가뭄과 강풍 같은 극단적 기상현상이 빈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산불의 횟수와 심각성이 커지면서 와인의 원료인 포도 농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섭씨 2도 높아질 경우 폭염 발생률은 14배 높아진다.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 확률도 매년 최대 57%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대규모로 와인을 생산하는 업자들도 새로운 와인용 포도 재배지를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참고 자료
Food Chemistry Advances,(2023) DOI: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2772753X230007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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