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R&D 예산 구조조정] "R&D 카르텔 대수술"… 소부장·감염병 등 108개 사업 통폐합

이준기 2023. 8.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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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 올해比 14% 감소
10조 늘렸던 文과 다른 행보
단기·中企지원사업 대폭 칼질
AI·양자 등 7대분야 투자 집중
R&D 성과저조 땐 패널티 적용
"나눠먹기·유사중복 행위 근절"
정부의 국가 R&D 예산 삭감을 반대하는 과학기술노조의 플래카드

윤석열 정부가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한 배경은 'R&D를 R&D답게 하는' 과학기술 철학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사업 전면 재검토와 R&D 분야 카르텔을 지목하면서 국가 R&D 예산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혁신을 지시했다. 이로 인해 이례적으로 6월 말 확정하려던 국가 R&D 예산이 전면 보류됐고, 정부는 대통령 지시를 반영해 두 달 만에 새로운 R&D 예산·배분안을 수립해 이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심의·의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초 예상한 대로 내년도 국가 R&D 예산은 올해보다 13.9% 감소한 21조5000억원으로 배정됐다. 기획재정부가 편성하는 일반 R&D도 삭감이 예상돼, 내년 국가 전체 R&D 예산은 30조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10조원 가량 늘어난 국가 R&D 예산이 윤 정부 들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윤 정부는 예산을 늘리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비효율과 낭비 요인을 걷어내고 혁신을 선택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예산을 늘리는 것은 쉽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지금껏 역대 정부는 (R&D 예산을 늘리는) 쉬운 길을 걸어왔지만, 윤석열 정부는 낡은 R&D 관행과 비효율을 없애고 퍼스트 무버로 혁신하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R&D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이른바 '임자가 정해져 있는 R&D', '기업 보조금 성격의 R&D', '나눠주기 R&D'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108개 사업을 통폐합, 3조4000억원을 삭감했다는 설명이다. 구조조정된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문재인 정부 때 급격하게 늘어난 소부장 사업, 감염병 등 단기 현안 대응사업과 중소기업 등에 뿌려주는 사업이 대폭 삭감된 것으로 보인다. 절감된 예산은 미래를 준비할 첨단바이오, 인공지능, 차세대 원자력, 사이버보안, 양자, 이차전지, 우주 등 7대 핵심 분야에 투자된다.

주영창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R&D 전체 사업에 대해 부처 칸막이 없이 원점에서 재검토해 나눠주기식, 관행적 추진, 유사 중복, 정책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 등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최근에 예산이 급증한 소부장, 감염병, 기업 R&D 분야는 임무 재설정을 통해 예산을 재구조화하는 등 투자를 내실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R&D 예산 삭감과 함께 정부R&D 제도혁신 방안도 마련했다. R&D 예산 배분부터 집행·평가 전 단계에 걸친 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적 R&D와 국가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 R&D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해외 우수 연구기관이 우리 R&D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국제 공동연구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선진국과의 협력을 강화한다.

또 출연연 연구자가 국내외 대학, 연구소, 기업 등과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이 새로 구성된다.

정부 R&D가 신속하고 유연하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순수 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기준과 절차를 대폭 완화하고, 도전·혁신적 R&D 사업은 예타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예산 배분·조정 시에도 부처별 예산 상한인 지출한도에 기계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국가적 임무 달성에 필요한 분야에 예산이 투입되도록 하는 한편, 출연연이 핵심 임무별 통합 예산을 도입하고 탄력적 인력 운영을 하도록 한다.

R&D에 대한 추가적인 구조조정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하반기부터 매년 성과 저조 사업 등은 구조조정 또는 차년도 예산을 삭감하고, R&D 사업 평가에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조정한다.

아울러 경쟁 없이 가져가는 R&D, 한 번 증가하면 줄어들지 않는 경직성 예산구조 등을 효율화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그동안 누적된 비효율을 과감히 걷어내 효율화하고, 예산과 제도를 혁신해 이권 카르텔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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