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윤리헌장 첫줄에 '외압 배격'… 정경유착 고리부터 끊기로
◆ 한경협 새 출발 ◆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나아가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국민의 준엄한 뜻에 따라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류진 풍산그룹 회장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로는 정경유착 근절이 꼽힌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전경련은 재계 단체 '맏형'으로서 지위를 상실하고 6년여간 표류해왔기 때문이다.
22일 류 회장은 전경련 총회에서 "(투명 경영을 위한) 첫걸음으로 윤리위원회를 신설한다"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모시겠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한 준법감시 차원을 넘어 높아진 우리 국격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며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내부통제 시스템인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규정했다. 정경유착 재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윤리위원회는 회원사에 회비 외에 재정적 또는 비재정적 부담을 지게 하는 사업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갖게 된다. 전경련은 일정액이 넘는 기금 조성과 집행은 윤리위에서 반대하면 추진할 수 없도록 시스템화할 예정이다.
외부 압력 차단 방법과 윤리위원의 책임 등은 이날 발표되지 않았다. 5명의 위원 선정 등 윤리위 구성과 운영사항 등 시행세칙 마련은 추후에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윤리위원장은 외부 인사가 맡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재계는 '허수아비' 조직이 아니라 회장단이나 사무국과 다른 의견도 낼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인 윤리위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류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관련) 내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그런 사건이 터진 게 부끄럽고 아쉽다"며 "저도 그때 부회장이었고 그런 걸 지켜봤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치를 만들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사무국과 회원사가 지켜야 할 '윤리헌장'을 총회에서 발표했다. 헌장에는 △정치·행정권력 등 부당한 압력을 배격 △윤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경영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에 진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협력 선도 △경제혁신 이끌며 일자리 창출 등 내용이 담겼다.
류 회장은 "아직도 우리를 지켜보는 따가운 시선이 있다"며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과감하게 변화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가 이런 윤리위원회, 윤리헌장의 부재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견제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회장단을 견제할 수 없다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선언적 성격이 강하고 구체안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직, 인력, 자산, 회원 등을 모두 승계하며 싱크탱크형 조직으로 탈바꿈한다.
류 회장은 "경제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적 대안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향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외부 기관과 협업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고급 정보를 생산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양보다는 질로 승부한다는 게 류 회장의 구상이다.
류 회장은 부회장단 선임에 대해 "이달 초 회장직 수락 후 새로운 부회장단 영입도 검토했는데, 서두르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훌륭한 분을 모시겠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산업이나 젊은 세대 등 다양한 기업인과 접촉하고 있다.
상근부회장 선임에 대해 류 회장은 "저에게 상근부회장 선임을 위임해준 만큼 업무 공백이 없도록 이른 시일 내에 찾겠다"고 말했다. 상근부회장은 지난 2월 권태신 상근부회장 퇴임 후 공석 상태다.
32~38대 회장을 역임한 허창수 전 회장은 이날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김병준 전 회장대행은 6개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며 고문으로 위촉됐다. 류 회장은 "회장대행을 했으니 예외적으로 고문을 맡는 것이고, 정치인을 고문으로 쓰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총회에는 류 회장을 비롯해 구자은 LS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이희범 부영주택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열린 총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며, 류 회장 취임과 한경협 출범을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이 다시 한경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정승환 재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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