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K화장실과 K아파트
경쟁력 있는 분야마저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
위기땐 기본으로 돌아가야
파행의 시작은 화장실이었다. '새만금 잼버리' 화장실 개수는 총 354개(변기 2712개). 참가자 4만3000명에 비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청소 인력이 모자라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새만금 숙영지에서 먼저 철수한 영국 대표단도 화장실 위생을 철수 이유로 꼽으며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했다. 칠레 스카우트 대원들이 '아시아 화장실'이란 자막을 붙여 올린 유튜브 영상에는 1970~1980년대 '재래식 화장실'까지 등장했다. 시골 할머니집에서나 봤을 법한 분뇨가 보이는 화장실 앞에서 한 대원은 "감옥 변기 같다"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비데 설치에 필요하다며 예산 증액까지 요구한 결과가 냄새나는 '푸세식' 화장실이라니.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후진국 국민이 된 느낌이다.
화장실은 한 국가의 문화와 위생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 때문에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한국은 '화장실 혁명'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쇼핑센터, 지하철, 고속도로 휴게소 등 공중화장실은 해외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쾌적하다. 대부분이 휴지가 비치돼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거나 그림이 걸려 있는 곳도 많다. 1996년 시작된 화장실 문화운동의 결과다.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에 앞장선 이는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이란 별명이 붙은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 그는 2007년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해 초대 회장까지 지냈다. 본격적인 한국의 '화장실 혁명'은 2000년 한국 방문의 해, 2002년 한일월드컵을 거치면서 이뤄졌다. 그런데 새만금 잼버리가 수십 년간 쌓아온 한국의 청결 이미지를 와장창 박살 내고 '화장실 후진국'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이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올림픽·월드컵같이 큰 행사는 잘 치르면서 잼버리같이 작은 행사를 망친 이유는 뭘까. 아이들 캠핑 행사니 대충해도 된다는 적당주의와 전임 정부가 유치한 행사에 대한 무관심·책임 회피가 빚어낸 실패다. 곧 없어질 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따내기에만 정신이 팔린 전북도도 화장실 따위에 관심을 뒀을 리 없다. 그러나 하찮은 것이 큰일을 망치는 법이다. "화장실 문제는 별거 아니다"던 잼버리 조직위가 움직인 것은 한덕수 총리가 변기를 닦는 사달이 나고서였다.
고층 아파트 공사장 붕괴 사고와 '순살 아파트' 사태도 무책임과 안일함, 부도덕이 빚은 참사다. 짓고 있던 아파트 외벽과 주차장이 무너져내리고, 하중을 견디는 데 필요한 기둥의 철근이 무더기로 빠진 어처구니없는 일은 건설 능력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 최장 현수교인 튀르키예 차나칼레대교와 높이 800m의 초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를 지은 세계 5대 건설 강국이다. 아파트 거주 가구가 52%에 달하는 '아파트 공화국'이기도 하다. 뛰어난 시공 능력을 갖고도 아파트 철근이 누락된 건 '안전과 타협해선 안된다'는 기본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가 덮이면 모르겠지 하는 기강 해이와 철근을 아껴 비용을 줄이려는 이기심이 결합된 결과다. 설계·시공·감리 업체를 살펴보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자 '엘피아'들이 이직한 전관 업체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LH가 임대아파트라고 함부로 지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우리가 자랑거리로 꼽아온 K건설, K화장실이 결국 세계적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30년 전 성수대교 참사 때 기본과 원칙을 잊은 '한국병'에 대해 통절하게 반성했는데, 다시 병폐가 도지는 모양새다.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는데도 실수라고 어물쩍 넘어가선 안된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흑역사는 또 반복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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