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사단 외압 논란···‘허점 투성이’ 개정 군사법원법만 보여줬다

강연주 기자 2023. 8. 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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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사망사건 원인 초동 조사만 하고
범죄 혐의점 인지 땐 경찰에 인계해야”
개정 군사법이 ‘수사 외압 야기’ 지적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8일 오후 승인 없이 TV 생방송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 사령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고 채모 해병대 상병 사망 경위를 둘러싼 수사 외압 논란을 놓고 ‘개정 군사법원법의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법에 따르면 군은 사망사건에 대한 초동조사를 진행해 범죄 혐의를 파악하는 즉시 사건 일체를 민간 경찰로 넘겨야 하지만,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수사본부의 조사 결과를 뒤엎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같은 법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정법이 사망사건에 대한 원인 조사를 군이 하도록 한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21일 고 채 상병 사건 조사기록의 재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본부의 발표는 박정훈 대령이 이끈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 결과를 뒤엎는 내용이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8명 중 대대장 등 2명의 혐의만 적시하기로 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하급 직원 등 6명에 대해서는 혐의를 빼고 사실관계만 적어 경찰에 이첩하기로 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기록만으로는 임 사단장을 비롯한 윗선의 혐의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은 사망사건에 대한 초동 조사 권한만 갖는다. 수사 및 재판권은 모두 민간에 있다. 군이 1차적인 사실확인(조사) 작업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 혐의점’이 인지되면 경찰에 ‘지체없이’ 사건을 인계해 수사하게 하는 구조이다.

전문가들은 해병대 수사본부의 결정을 뒤집은 조사본부의 결정은 개정 군사법원법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법상 군 사망사건의 수사권이 민간 경찰에 있는 만큼 혐의 유무에 대한 판단도 경찰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판사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는 22일 “이 사건의 조사 주체는 해병대 수사단이었다”며 “국방부는 조사 주체의 초기 판단에 따라 사건을 경찰에 넘겨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이 변사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혐의점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이 ‘혐의 유무’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조사본부가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혐의점을 빼고 경찰에 사건을 넘긴 결정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개정법상 ‘조사와 수사’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령 측과 국방부도 이 부분에 대해 일부 이견을 보이는 상황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고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보고서의 재검토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병대 수사단의 초기 조사기록에 사고 현장에 대한 분석과 현장감식 결과 등이 포함된 실황조사 내용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대령 측은 이날 반박자료를 통해 “실황조사는 표현을 ‘조사’라고 쓰지만, 내용은 ‘수사’”라며 “국방부 조사본부의 ‘실황조사 기록 불충분’ 지적은 개정 군사법원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위법한 발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령에게는 수사권이 없어 실황조사를 할 수 없고, 이는 오히려 법 위반이 된다”고 했다.

군에서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혐의점을 인지해야 사건을 경찰에 인계할 수 있다는 개정법 내용이 이번 수사 외압 논란을 야기했다는 시각도 있다. 사망사건에 대한 원인 조사를 군에서 하도록 규정한 탓에 군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자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사망 원인 조사는 군에서, 범죄 수사는 민간에서 하는 수사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군으로부터 사건을 이송받은 경찰이 수사의 완결성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박 대령 측은 임성근 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박 대령 측 변호인은 “수사단장은 해병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판단했는데,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 자체를 뺀 상황이라서 혐의를 밝힐 필요성이 증대됐다”고 했다. 박 대령 측은 조만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할 계획이다. 유 관리관은 박 대령과 5차례 이상 통화하며 해병대 수사단의 최초 보고서에서 죄명이나 혐의사실을 빼라고 압박한 의혹을 받는다.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시민단체의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이날 김태효 대통령실 안보실 차장과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신범철 국방부차관, 유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단체는 이들이 수사 외압 의혹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8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최초로 범죄인지를 통보한 해병대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하고, 최주원 경북경찰청장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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