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중동을 논리적으로 읽는 눈

2023. 8. 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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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문화·역사 알 필요는 없어
과학적 질문이 더 나을 수 있어

중동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이 전례 없는 개혁 행보에 나서고 있고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데탕트를 선언했다. 동시에 역내외 나라가 지역 헤게모니와 세계 패권 자리를 두고 중동 전역에서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인다. 미국의 탈중동 정책을 둘러싸고 요란한 탐색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튀르키예가 서로 눈치 싸움에 한창이고, 미국의 가치와 러시아의 의리가 정면 대치한다. 중국 역시 틈새를 노린다. 요동치는 지정학의 한가운데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되기도 한다.

이런 중동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읽을까? 무엇보다 국가 간 상호작용을 분석할 때 개별 나라 내부의 렌즈로 들여다봐야 더 입체적인 그림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도 두 국가 내부의 여러 행위자가 자원 배분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최근 변혁과 격변의 배후에 중동 MZ세대의 꿈과 상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요즘 중동에서도 세대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MZ세대 중 일부는 폭력적 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자신이 비판했던 권위주의적 지도자보다 더 무능하고 괴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 전 세계 변화의 중심인 중동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은 특정 문명이나 식민지 유산의 영향보다는 인간의 멈추지 않는 손익계산과 그에 따른 선택으로 봐야 가장 명쾌하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확보하려고 행동하는 가운데 비합리적인 면을 자주 드러낸다. 마음에서 불타오르는 합리적 선택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판단과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중동의 굵직한 격변을 이해하려면 불가측성에 주목해야 한다. 1979년의 이란 이슬람 혁명과 2011년의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쪽으로의 갑작스러운 쏠림을 일으키는 티핑 포인트에 이르기 직전까지 사람은 불안한 속마음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선택의 순간을 미루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재는 그 체제의 특성으로 별다른 전조 현상 없이 여느 때와 같은 정치 상황을 표면적으로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극적으로 무너진다. 독재 체제하에서는 집권 세력조차 정확한 여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둘러싼 시각과 분석을 보면 이분법과 흑백논리가 짙게 나타난다. 좀 더 비교분석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면 사고를 숫자로 바꿔보는 연습도 좋다. '중동의 민주주의 수준은 낮다고 하는데 백분율로 나타내면?' '튀르키예와 이집트 모두 권위주의 국가라던데 두 나라의 억압적 상황을 숫자로 비교하면?' 하는 식의 방법도 흥미롭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개혁을 시작했다는데 성공 가능성은?' '이란 강경파와 미국 매파가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등의 질문도 좋다. 막연한 느낌이나 확고해 보이는 주장을 숫자로 바꿔보면 구체성과 진실 찾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과거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엄습한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출신의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2017년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를 칭찬하면서 그의 장점은 바로 게으름이라고 했다. 세일러가 여러 가지 작은 디테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질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으름의 미덕은 현대 중동 분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외우려 하지 말고 해묵은 음모론은 버린 후 중동을 과학적으로 읽어보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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