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임원을 ‘경영책임자’로 본 검찰…“중대재해법 무력화”
대표 아닌 안전 임원을 ‘경영책임자’로 본 첫 사례
울산지검이 지난해 5월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에쓰오일의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가 아니라며 불기소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뒤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첫 사례다. 노동계는 이런 판단이 반복될 경우 중대재해법이 무력화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울산지검은 지난 11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후세인 A. 알카타니 에쓰오일 대표이사를 불기소했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사우디아람코 그룹이 6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5명 전원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외국인이다.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간 경영계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선임하면 대표이사는 면책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울산지검은 에쓰오일에서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안전보건 담당 임원(CSO)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도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길 때 대표이사가 외국인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CSO를 경영책임자로 봤다.
울산지검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에쓰오일 이사회는 2021년 11월 ‘기존 운영총괄 산하 안전보건 부문을 본부로 격상하고, CSO에게 기존 대표이사 권한 중 안전보건에 관한 총괄적이고 최종적 권한을 위임’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표이사는 지난해 2월 경영위원회 회의에서 산안법에 따른 안전보건계획 보고서 내용과 안전보건 조직 구조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중대재해법에 대비하기 위한 IT 시스템 개발 검토를 언급했다”며 “하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 바로 대표이사가 CSO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구체적 지시·관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은 22일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한 지방검찰청의 결정이 아니라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는 울산지검 결정이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보고 수사·기소를 해온 종전 검찰의 입장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운동본부는 “노동부 해설서, 대검 중대재해법 벌칙해설엔 ‘안전보건 담당이사가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대표이사)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 개념을 울산지검처럼 해석하면 앞으로 대표이사는 모두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안전보건 책임이 외주화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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