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계 1위 디스플레이 업체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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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디스플레이 패널 1위(출하량 기준) 기업이 신기술을 뽐내는 행사에서 차세대 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관련해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발표를 듣던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이면서도 특허 건수를 강조할 뿐 이렇다 할 자체 OLED 기술을 소개하지 못하는 건 BOE의 정체성을 방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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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디스플레이 패널 1위(출하량 기준) 기업이 신기술을 뽐내는 행사에서 차세대 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관련해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비즈니스포럼 2023’.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의 발표를 앞두고 진행자는 “삼성과 민감한 문제 때문에 OLED 내용은 빼고 LCD(액정표시장치)에 관해서만 발표하겠다고 BOE 측에서 미리 양해를 구해왔다”고 말했다.
이날 연사로 선 황웅천 BOE 총감은 말을 아끼며 회사 소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에 앞서 발표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접고 말고 늘리는 중소형 OLED 신기술과 대형 OLED 메타 기술을 소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발표를 듣던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이면서도 특허 건수를 강조할 뿐 이렇다 할 자체 OLED 기술을 소개하지 못하는 건 BOE의 정체성을 방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기술 탈취 문제를 논할 때 BOE가 빠지긴 어렵다. BOE는 현재 삼성과 특허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6월 “아이폰12 이후 사용된 모든 아이폰의 OLED 디스플레이에서 특허 5종을 침해당했다”며 BOE를 미국 텍사스주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앞서 BOE가 지난 4월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를 상대로 중국 충칭 법원에 OLED 특허 침해 소송을 내자 적반하장식 기출 침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기술·인력 탈취 논란은 하루 이틀된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BOE는 LCD 공장을 지으면서 상위 직책인 총감에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 출신 한국인을 앉히고 총감 직속 팀장들을 한국인 지인으로 뽑게 한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2003년엔 현대전자 LCD사업부에서 나온 국내 LCD 기업 하이디스를 인수하고 핵심 기술과 인력을 BOE 본사로 빼낸 뒤 하이디스를 청산한 사례도 있었다.
낮아진 기술 장벽과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올라타 BOE는 지난 10여년간 최대 디스플레이 시장인 LCD 산업을 잠식해 나갔다.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LCD 사업 출구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중국은 지난해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42.5%를 기록해 한국을 제치고 1위 자리를 꿰찼다.
한국이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OLED 산업에서도 과거와 비슷한 기술·인력 탈취가 재현되고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 패널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대규모 OLED 패널 공장을 짓고 있다. LCD 시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미래 경쟁력 확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 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허 소송과 관련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BOE와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2년 연속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의 특허 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패널 업계 큰손 고객인 삼성전자도 BOE와 진행하던 신규 개발 과제를 모두 중단하고 LCD TV 패널 구매를 줄였다. 세계 1위 기업이라도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산업계가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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