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지질 역사 켜켜이 쌓인 노을 명소... 해변 언덕엔 붉노랑상사화
탈 많고 말 많은 잼버리였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면 기름지고 풍성한 갯벌을 희생시킨 새만금간척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까. 변산반도 여행은 바로 부안 잼버리 행사장과 새만금방조제를 지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훼손되지 않은 바다와 백악기 지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국가지질공원을 따라가는 길이자, 바닷가 마을을 연결한 ‘변산마실길’이기도 하다.
넓게 뚫린 4차선 국도를 따라 언덕 하나를 넘으면 변산해수욕장이다. 1933년 개장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 중 하나다. 아담한 솔숲 너머로 새하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물이 빠지는 간조 때면 해수욕장은 바다 쪽으로 무한정 넓어진다. 이때는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보다 물기 촉촉한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이 더 많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얕은 물가에는 수많은 새들이 먹이를 찾아 종종걸음을 친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해수욕장이다. 해변 동쪽 언덕에는 ‘사랑의 낙조공원’이 조성돼 있고, 뒤편 산자락에는 노을전망대를 세워 놓았다.
해변 서쪽 송포항은 변산마실길 2코스 시작 지점이다. 포구에서 산자락으로 걷기 길이 연결된다. 옛날 군부대의 초소를 연결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변산해수욕장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광활한 백사장 너머 새만금방조제가 직선으로 가로질러 있다. 약 500m를 걸으면 오솔길이 끝나고 해수욕장 바깥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잡목을 제거한 언덕배기에 붉노랑상사화가 꽃밭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분홍빛 상사화가 섞여 있다. 이른 봄에 돋아난 잎은 사라지고 매끈하고 길쭉한 꽃대에 피어난 꽃송이가 마치 조화를 꽂아 놓은 듯 비현실적이다. 화사한 꽃송이 뒤로 푸른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진다.
국내에 서식하는 상사화에는 일반 상사화 외에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진노랑상사화, 백양꽃, 제주상사화, 흰상사화, 꽃무릇(석산) 등이 있다. 붉노랑상사화는 제주와 전남북에 분포하는데 특히 부안 변산반도에서 많이 자란다. 보통 연한 노란색인데 직사광선이 강하면 붉은빛이 감돌아 붙여진 이름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순이 절정이라 하니 이번 주말이면 더 풍성할 듯하다.
격포해수욕장으로 이동하면 전북 서해안 국가지질공원의 상징인 채석강과 적벽강이 해변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부안과 고창에 분포하는 전북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명소는 대부분 백악기에 형성된 화산퇴적암이다. 그 시기 화산 활동과 퇴적 작용에 관한 정보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2017년 국내 10번째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부안에서는 변산마실길의 적벽강·채석강·솔섬·모항, 내변산의 직소폭포와 격포항에서 16km 떨어진 섬 위도가 포함된다.
채석강은 퇴적층이 파도에 침식돼 형성된 해식절벽과 동굴이 장관을 이루는 변산반도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다. 해식절벽에는 과거 호수 바닥에서 형성된 퇴적암과 변형구조, 공룡발자국과 단층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해안 절벽은 해 질 무렵 한층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절벽 전체가 불그스름하게 물드는데, 특히 간조 시간과 맞으면 해식동굴 안에서 보는 노을 풍광이 일품이다. 탐방로는 격포항과 해수욕장 양쪽에서 연결된다. 물에 잠겼던 바위는 물기를 머금고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격포해수욕장 위쪽 적벽강도 백악기 후기 거대한 호수 아래 퇴적층이 솟아올랐다 침식되면서 형성된 해안 절벽이다. 바로 위 바다 당집인 수성당 주변에 코스모스 꽃밭을 조성해 놓았다. 이제 막 한두 송이씩 피고 있어 곧 가을 분위기를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변산마실길 3코스에 포함된다.
마실길 4코스가 끝나는 전라북도교육청 학생해양수련원 앞의 솔섬도 변산의 노을 명소로 꼽힌다. 화산 파편으로 형성된 봉우리에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자라고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일대 바다와 하늘이 붉게 물들어 그림 같은 풍광을 빚는다. 물이 빠지면 해안에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주변엔 제주에서나 볼 법한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가 뒹굴고 있다.
솔섬에서 도로를 따라 다시 언덕을 넘으면 모항해수욕장이다. 인근 해안절벽에 생선 뼈를 닮은 화석이 있다는데 모항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사실 지질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육지가 바다로 잘록하게 튀어나온 지형의 한쪽은 해수욕장, 맞은편은 항구다. 둥그스름하게 휘어진 해변은 맑고 아담하다. 안도현 시인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라고 극찬한 마을이다. 모항을 지나면 길은 소금기 짭조름한 곰소항과 줄포만 갯벌로 이어진다.
부안=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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