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12억 배상" 판결에…"더는 애 안 받아" 술렁

박미주 기자 2023. 8. 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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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생아 뇌성마비에 대해 의사에 12억 배상 판결… "분만 기피 심화해, 국가 책임제 필요"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 뉴스1

"괜히 분만 담당했다 아이가 잘못되면 배상 책임만 커지는데 굳이 힘들게 담당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저도 힘들어서 분만 진료는 오래 못할 것 같아요."(A 산부인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분만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원가량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분만 기피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분만 사고에 대해 100% 책임지고 분만 의료수가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재판부는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신생아와 그 부모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도분만을 하루 앞둔 임신부가 태동이 약하다고 증상을 말했지만, 의사가 바로 진료하지 않고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해 신생아의 장애 발생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이 나오자 산부인과 의료계는 술렁이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을 배상토록 함으로써 가혹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분만실은 더욱 사라질 것이고 의사들의 산부인과 진료, 특히 분만 기피 현상은 심화해 필수 의료가 붕괴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 판결 이후 성명서를 내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최선을 다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너무 가혹한 판결"이라며 "분만의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산부인과 의사들이 더 견뎌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상급심에서는 법원이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을 거듭 요청하는 바"라고 했다.

산부인과학회도 지난 1일 성명서를 내고 "분만이라는 의료행위에는 본질적으로 내재된 위험성이 있어 산모나 태아의 사망 혹은 신생아 뇌성마비 등 환자가 원치 않던 나쁜 결과가 일정 비율로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계 의학계의 지적"이라며 "태아의 이상을 발견한 즉시 의료인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책임을 묻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분만 현장에서 밤낮으로 애쓰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위축시키고 사기를 저하한다"고 반발했다.

이어 "분만이라는 의료행위를 중단하게 해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재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선의의 의료행위 후에 발생한 일부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나눠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실제 앞으로 분만을 맡지 않겠다는 의료진이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분만 수가가 50만원밖에 안 되는데 위험도가 높아져 조만간 분만실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들이 많다"면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들도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출신 산부인과 의사도 "산부인과 동기 8명 중 현재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는 나 포함 3명인데 리스크가 커져 분만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졌다"며 "나도 현재는 분만 진료를 보고 있지만 매번 힘이 들고 긴장돼 몇 년 후엔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국가가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무과실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서만 최대 3000만원 한도(국가 70%, 분만 의료기관 30%)로 보상하고 있다. 오는 12월부터는 관련법 개정으로 국가가 100% 보상하는 것으로 바뀌지만 한도는 여전히 3000만원이다.

김재연 회장은 "우리 분만 수가는 50만원이지만 미국은 1200만원, 일본은 850만원, 대만은 650만원"이라며 "분만 수가를 대폭 올리고 고의로 죽인 게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 영국·대만·일본 등처럼 분만에 대한 모든 배상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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