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결혼 증여세 면제, ‘금수저’ 프레임은 틀렸다

권구찬 선임기자 2023. 8. 2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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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혼인자금 증여에 탈세 묵인
공제 신설한들 실질 감세효과 미미
정작 초부자에겐 ‘코끼리 비스킷’
범법자 양산하는 세법이 정상인가
백상경제연구원 부국장
[서울경제]

며칠 전 동창 결혼식에서 화제는 단연 신혼부부 증여세 면제였다. “결혼 자금을 좀 대줬다고 해서 세금 떼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는 조세 문외한의 불평부터 “어차피 세무조사를 하는 것도 아닐 텐데”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 “아이 둘 있는 너는 3억 원의 여윳돈이 있는가”라고 돌직구를 던지자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다. 다들 “노후 자금도 빠듯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렸지만 “결혼해서 분가한다는 데 빈손으로 내보낼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결혼 자금 증여세 공제 제도가 9월 정기국회 세법 심사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기존 5000만 원의 기본 공제 외에도 1억 원의 결혼 공제를 신설하는 것으로 신혼부부로서는 양가 부모로부터 최대 3억 원까지 증여세 부담 없이 결혼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주 ‘세정 3관왕(국세청장·관세청장·세제실장)’ 출신의 이용섭 전 광주시장을 필두로 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정부안 검증을 벼르고 있다. ‘제3지대’를 모색 중인 이 전 시장은 민주당 감투를 쓰는 게 뭔가 찜찜했는지 “세입 기반을 잠식하는 불공정한 감세를 막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으레 “또 초부자 감세냐”며 날을 세웠다.

초부자 감세론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물론 1억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만한 결혼 자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느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 주고 남는 돈을 쓴다’는 옛말처럼 결혼 자금 상당액을 부모가 분담하는 것은 오래된 혼인 문화이자 인지상정이다. 그 정도의 비용 지원이 우리나라 중산층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져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무턱대고 ‘부모 찬스’ ‘금수저’ 프레임을 씌울 것도 못 된다. 마치 억 소리 나는 세금 혜택을 준 것 같지만 공제 신설의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세무 당국은 사회 통념을 벗어난 수준이 아닌 한 탈세를 알고도 눈감아왔던 게 현실이 아닌가. 세금을 자진해서 납부하는 신혼부부가 또 얼마나 될까 싶다. 세입 기반을 잠식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약한 건 그래서다. 오히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떡 하니 사줄 정도의 초부자에게는 1000만 원(세율 10%)의 감세 혜택이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할지 모른다.

물론 정책 결정 과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지나치게 과대 포장했다. 세제 합리화라는 두리뭉실한 명분만으로는 거대 야당의 감세 반대 벽을 넘지 못할 것 같으니 애써 강조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너무 나갔다. 세 부담 탓에 결혼하지 않거나 못한다고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결혼한다고 아이를 반드시 낳는 것도 아니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라면 관련 부처 합동으로 큰 골격을 짠 다음 그에 맞춰 세제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게 올바른 순서이기도 하다.

정작 걱정되는 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그 정도로는 정책 효과가 신통치 않으니 결혼 또는 출산 장려금을 주자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구호가 ‘저출산 해소’ 아닌가. 20년 가까이 200조 원가량 퍼부었지만 출산율이 반 토막이 난 흑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혼자금 증여 공제는 혼인 문화와 세법의 괴리를 현실에 맞게 해소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처음에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다 점차 “논의해볼 만하다”는 기류가 형성되는 건 다행스럽다. 정부도 원안 사수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융통성을 내비치고 있다.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세대 간 부의 이전을 서두르는 초고령 국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아직은 멀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증여세가 불합리한 측면이 있지만 세율을 낮추려면 사회적 공론화,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게 상속증여세제다. 사문화한 조항을 고치는 이번이 합리적 개편을 모색하는 첫걸음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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