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일본통·尹후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사법 보수화’ 속도붙나

김희진·김혜리 기자 2023. 8. 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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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 지명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61)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 주류 법관으로 꼽힌다. 고법 부장판사가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에 이어 두번째다. 이 지명자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를 두고 비판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대법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사법부 지각 변동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 대법관 인사에서 오석준 대법관을 시작으로 네번째 연달아 ‘서오(육)남’(서울대 출신·50~60대·남성)이 지명된 것을 두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지명자는 주관이 강하고 추진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2021년 대전고법원장 취임 때는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시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수리와 관련해 ‘거짓말 해명’ 논란에 휩싸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낭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두 차례 연수한 이 지명자는 일본 사법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일본통’으로 통한다. 일본 법조인과 교류가 많고 일본 등 해외 법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법원 내 비교사법의 대가로도 불린다. 1988년 ‘이태원 살인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주심을 맡은 후 법정 통역에 관한 논문 ‘도쿄재판소의 외국인 형사사건 처리 매뉴얼-우리나라의 외국인 형사사건의 합리적 처리 방안의 모색’을 썼다. 논문에선 형사용어 교육, 적정한 통역수당 지급 등 동시통역 수준으로 (법정에서의) 통역 질을 높이기 위한 일본 법원의 노력을 소개했다.

이 지명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2016년 8월 투렛증후군(틱장애)을 앓는 사람도 장애인으로 등록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틱장애를 앓는 원고가 장애인 등록신청을 했지만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틱장애가 장애로 명시돼 있지 않아 신청을 거부당한 사건이었다. 이 지명자는 이 행정처분을 두고 “원고가 합리적 이유 없이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것”이라며 “평등 원칙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했다. 이 판결은 2019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9년 8월에는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으로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구 전 청장이 구체적인 살수 상황까지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집회 총괄책임자로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 판결은 집회 관리 총괄책임자였던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법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이 지명자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때인 2007년 6월 서울 YMCA 여성 회원들이 총회 의결권을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서울 YMCA에서 여성들은 이사·감사 등 임원 선출권, 총회 의결권, 임원 피선거권을 지닌 총회원이 될 자격이 없었다. 여성 회원들은 남녀 회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지만, 이 지명자는 “여성 회원에 대한 총회 의결권 부여는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2009년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사 결정 과정 등에서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 지명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 지각 변동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야간대학 등 비서울대 출신, 재야 변호사, 지방에서 오래 일한 ‘향판’ 등을 대법원에 입성시켰다. 여성 대법관도 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오석준·권영준·서경환 대법관에 이어 이 지명자까지 서울대 출신 50~60대 남성이 줄줄이 대법원 구성원이 됐다. ‘서오남’ 일색인 과거의 인적 구성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대법관 임명은 통상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협의를 거쳐 정한다. 이 지명자와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코드’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만큼 대법원 구성이 보수 우위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년부터 대법원 구성은 급격하게 변한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8월, 김상환 대법관이 12월에 퇴임한다.

지난 7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3명 대법관 중 진보 성향으로 평가되는 법관이 7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그동안 대법원은 소수자 보호를 강조하는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전향적 판결을 내놓았는데, 앞으로는 사회·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전원합의체 판단에 보수 색체가 짙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법조계는 전망한다.

이 지명자는 법조계 ‘엘리트 모임’으로 불리는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비된다. 민사판례연구회는 양승태·이용훈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전직 대법관 다수가 회원으로 활동한 모임이다. 과거엔 소수 실력파 법조인만 선별적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이 지명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이다. 둘은 대학 때 친분을 쌓아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 국정감사 때는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질의에 “제 연수원 동기생하고 아주 친한 분”이라며 “(저와도) 친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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