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정경유착' 고리 정말 끊을까 [유미의 시선들]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류진 풍산그룹 회장으로 수장을 교체하며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합류에 힘입어 '재계 맏형'의 노릇을 다시 맡게 됐다.
다만 '정경유착'의 과오를 제대로 벗고 쇄신에 성공할 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이날 임시총회를 열어 한경협으로 간판을 바꾸고 류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류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한경협이 신뢰받는 경제단체가 되도록 '정경유착' 근절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 한경협에 설치될 윤리위원회를 통해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윤리기준을 세우고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류 회장은 "경제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며 "국민과 소통 위해 노력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 12년 회장 연임한 허창수…류진號 전경련은 좀 다를까
이처럼 류 회장이 한경협의 신임 회장이 되기까진 그간 많은 난항이 있었다. 허창수 전임 전경련 회장이 6연임하며 12년간 이끌어 온 후 사의를 표명했지만, 마땅한 후임자가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허 전 회장 역시 당초 6연임까지 할 의지가 없었지만 후임자가 없어 회장직을 끌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 후 전경련이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자, 4대 그룹이 연이어 탈퇴를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이승철 전경련 전 부회장이 이 사건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자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전경련이 인식되면서 다른 주요 대기업들도 엮이기 싫어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전경련 패싱'이 자주 목격되자 혹여나 불똥이 튈까 심하게 거리를 두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기업과 소통할 때 특별히 전경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패싱' 논란을 자초했다.
이 탓에 회원사도 639개사에서 450여 개로 줄고, 임직원도 200명에서 80명 수준으로 줄었다. 4대 그룹 탈퇴 여파로 회비도 반토막 났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전경련의 입지는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2월 합류하면서 국내외서 정부와 손잡고 굵직한 행사를 주관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3월 일본에 이어 지난달 미국에서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전경련이 주관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지난 20대 대선 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실상 정치인으로 여겨져왔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이번에 전경련 상근고문으로도 선임된 상태다.
류 신임 회장은 외교관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도 상근부회장으로 선임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사는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에 일각에선 한경협이 출범 초반부터 전문성이 부족한 친정권 인사를 앉혀 현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 바꾸는 게 혁신인가"라며 "여당 당대표를 맡았던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전경련 대표를 맡았던 것만큼 정경유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 삼성이 쏘아올린 4대 그룹 재가입…한경협에 힘 싣나
이 같은 상황 속에 삼성은 일단 한경협의 새출발에 힘을 실어줬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회원사였던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5개 계열사 중 삼성증권을 제외한 4곳이 한경협에 합류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날 전경련 임시총회 후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삼성화재 4개사는 구 전경련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았다"며 "수 차례에 걸친 준법감시위원회의와 이사회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각사 CEO들은 한경협으로의 흡수통합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경협(전경련)으로의 복귀를 공식화 한 것이다.
다만 삼성증권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협약사가 아닌 탓에 한경협에 통합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이번 회원사 복귀 명단에서 빠졌다. 아직까지 '정경유착' 방지 장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데다, 준감위가 삼성의 전경련 복귀와 관련해 몇 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하며 조건부로 찬성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 준감위와 협약을 맺은 곳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에스디아이(SDI), 삼성전기, 삼성에스디에스(SDS), 삼성화재 등 7곳이다.
앞서 준감위는 한경협이 약속한 싱크탱크 중심의 경제단체로서의 역할에 맞지 않는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정경유착 행위 △회비·기부금 등의 목적 외 부정한 사용 △법령·정관을 위반하는 불법행위 등이 있으면 관계사는 즉시 한경협을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
또 삼성 관계사가 한경협에 회비를 납부할 경우 준감위의 사전승인을 얻고, 특별회비 등 명칭을 불문하고 통상적인 회비 이외 금원을 제공할 경우 사용목적, 사용처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위원회의 사전승인을 얻으라고 했다. 아울러 매년 한경협으로부터 연간 활동내용 및 결산내용 등에 대해 이를 통보받아 준감위에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준감위는 "전경련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을 일단 고수하고 있다.
삼성의 이 같은 결정에 4대 그룹들도 한경협 재가입을 기정사실화 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경연이 한경협으로 통합되며 자연스레 복귀 수순을 밟았다. 한경연은 삼성 5곳(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SK 4곳(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 2곳(LG·LG전자) 등이 회원으로 그간 활동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이 '정경유착'이란 인식을 앞으로 어떻게 끊어 낼 것인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류 신임 회장은 한경연 흡수·합병 추진이 4대 그룹을 억지로 들어오게 만들려는 꼼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류 회장은 "과연 우리나라를 위해 좋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바로 경제인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라며 "(한경연 흡수·합병을 통한 4대 그룹 재가입은) 전경련에게도 어려운 선택"이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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