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잠자는 한국 영화를 깨울 수 있을까 [엄형준의 씬세계]

엄형준 2023. 8. 22. 1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 초청 유재선 감독 ‘잠’ 9월6일 개봉
잠 소재로 신혼부부가 겪는 불안과 공포 그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면
멀어질 수 없고, 맞서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어”
이선균 “날 음식 먹는 연기… 봉준호식 연출”
봉준호 ““최근 10년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이어붙이기 투박하지만 신선한 시나리오 주목

칸이 주목한 신인 감독의 신선함은 한국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이 오는 9월6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무명이었던 유재선 감독은 이 작품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고, 시제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며 일약 충무로의 주목받는 얼굴로 떠올랐다.
평단의 관심을 끈 포인트는 영화의 소재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잠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잠이 들 때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영화는 신혼부부로 수면 중 이상행동을 하는 현수(이선균)와 임신한 아내 수진(정유미)이 겪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18일 영화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 감독은 “누구나 한 번쯤 몽유병 환자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을 거 같다. 증상이 심해 뛰어내린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다든지 하는 얘기. 되게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면서 “몽유병 환자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몽유병 환자 옆을 지키는, 그를 사랑하는 배우자는 어떨까 궁금증이 컸다”고 말했다.

계속 이어진 유 감독의 설명은 이 영화를 다른 스릴러물과 다르게 만드는 특징이다.

유 감독은 “보통 장르 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이나 위협의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멀어지는 게 주된 구조”라면서 “저희 영화 같은 경우 공포의 대상이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멀어질 수 없고, 자의적으로 같이 있어야 하고, 공포와 위협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점이 ‘후킹’(Hooking·마음을 사로잡음)된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3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 영화는 따뜻한 분위기의 신혼부부 집에 찾아온 보이지 않는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깊은 밤 낯선 소리가 들려오고, 자다가 갑자기 일어난 현수는 “누군가 들어왔어”라고 말한다.

몽유병 증세는 얼굴을 긁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냉장고에서 날음식을 꺼내먹는 증세, 그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려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예고편에도 쓰인, 날음식을 먹는 기괴하고 충격적인 행동은 이선균이 실제 생고기와 생선, 계란 등 날음식을 먹으며 촬영한 날 장면이다.

이선균은 “(먹은 음식은) 다 진짜였다. 위생상태가 좋은, 장 봐온 거로 준비해 줬다. 세척 잘한 걸로 했다”면서 “생선은 가시에 찔릴까봐 절인 생선을 줬다”며 웃었다.

유 감독은 “저희 PD님께서 아시는 푸드아티스트분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먹을 만한 맛이 나는가 (연구했다)”면서 “레몬 물에 절이고, 연출팀이 먹어보면서 배우님께 맛보게 해도 되는 상태인지 시행착오 겪었던 기억이 난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더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지고, 수진의 출산과 함께 영화는 2장으로 넘어간다. 2장에선 사랑하는 남편과 동시에 사랑하는 아이를 지켜야 하는 수진은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린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려는 용기는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기폭제다.
나이 어린 신인 감독이지만 배우들의 감독에 대한 신뢰는 커 보였다.

정유미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떻게 찍어 나가실지 많이 궁금했다”면서 “현장에서도 (시나리오와) 똑같이 연기 지시를 준 것 같고, 그렇게 찍어 나갔다. 하라는 대로만 했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연출의) 세대 차이는 못 느꼈다”며 “연출 기준이 봉준호 감독님과 많이 (비슷하다), 콘티대로 채우려는 노력이 있고, 대본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있다”고 했다.

영화는 1장, 2장, 3장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결말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유 감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언급을 피한 채 영화의 결말에 대해 “극장 문을 나설 때 누가 (영화에 대한 해석이) 맞는지 대화가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봉준호 감독님이 엔딩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감독의 의도를) 누설하지 말라고 팁을 주셨다. 더 이어나갈 수 있는 재미이기 때문에 재미를 박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는 투박한 이어붙이기의 흔적이 있지만, 흥미로운 시나리오로 신선함을 선사한다.

봉 감독은 이 후배 감독의 영화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고 평했다고 한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