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 맞춘 노랑버스가 없어요" 전국 초등 수학여행 줄취소 우려
교육 당국·업계 "규정 따른 차량 극소수…현실과 동떨어진 지침"
"개조에 목돈 들어…관련기관 대책 논의해도 답 없어 유예기간 줘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전국 초등학교 곳곳이 올가을 수학여행(테마학습여행)을 무더기로 취소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여행에 이용할 수 있는 전세버스 구하기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까닭이다.
어린이들을 여행지로 실어 나를 버스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체험학습 등 비정기 운행 차량도 어린이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포함되면서 관련 규정을 갖춘 차량을 구하기 어려워 올가을 초등학교 수학여행 운영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제처·경찰청 "전세버스도 어린이 통학버스 지침 따라야"
사태의 시작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주교육청은 법제처에 "현장체험학습도 도로교통법상 어린이통학버스 이용 대상에 해당하느냐"고 법령 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도로교통법 제2조 제23호 등 관련해 교육과정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의 이동은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등 비정기적인 운행 차량도 어린이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교육부와 전세버스조합연합회 등에 규정 준수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어린이들이 전세버스를 이용해 수학여행을 떠날 때도 노란색 스쿨버스를 빌려야 한다는 의미다.
전세버스를 어린이통학버스로 신고하려면 차량 전체를 황색으로 칠해야 하고 어린이 탑승 안내 표지를 설치해야 하며 어린이 체형에 맞춘 안전띠 설치, 운전자의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교육 이수 등이 필수다.
문제는 해당 조건을 채우는 전세버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국 교육청 "수학여행 무더기 취소 위기…현실 반영 못 한 조치"
각 시도 교육청은 이런 지침을 교육부로부터 받고 비상이 걸렸다.
당장 올가을부터 각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예정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을 실어 나를 버스가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경우 규정에 맞는 버스가 도내에 10대가량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올해 2학기 각 초등학교가 계획한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이 1천460건인 것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세종시에는 통학 차량 규격에 맞춘 전세버스가 총 6대뿐이다.
대구에서는 지금 당장은 경찰이 단속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 현장 학습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으리라고 파악했지만, 경북에서는 사실상 다음 학기에 모든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소풍 등을 전면 취소하는 분위기다.
광주의 경우 전세버스는 850여대로 추산하는데, 통학버스 규격에 맞춘 차량은 5%대인 40∼50대에 불과해 사실상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울산교육청은 일단 관련 내용의 공문을 학교로 내리는 것을 보류하고 상황을 지켜본다는 견해다.
부산도 숙박형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학교는 190여 곳이며 교육청 신고사항이 아닌 1일형 현장체험학습까지 포함하면 수천 건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지침에 따른 버스는 170대에 그쳤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대부분의 수학여행 일정이 특정 시기에 몰려 있고, 어린이 통학차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세버스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 마디로 학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조치"라고 말했다.
각 시도 교육청과 직속 기관이 운영하는 스쿨버스도 대부분 학생 등하교 용도로 운행해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최근 회의에서 관련 문제를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 강원교육청은 22일 긴급 기자 브리핑을 열고 관련 당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세버스 업계 "1대당 개조 비용 500여만원…유예기간이라도 줘야"
교육 당국은 물론 버스업계도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이라고 성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업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 이후 모처럼 수학여행 대목에 기대가 부풀었는데 학교로부터 예약 취소가 줄을 잇자 다시 울상이 됐다.
실제로 강원 원주의 한 업체가 9월 수학여행 운행을 위해 학교들과 계약한 버스 중 64대가 예약 취소됐다.
그렇다고 당장 지침에 맞는 버스를 마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어린이통학버스에 맞게 버스를 개조하려면 좌석을 모두 교체해야 하는 등 1대당 500만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버스는 어린이 사용이 없을 때 통근이나 관광 등 다른 용도로 빌려줄 수 없어 업계는 영업 손실을 이유로 개조를 꺼리고 있다.
업계는 같은 법을 두고 해석이 갑자기 뒤바뀌어 혼란을 겪고 있다.
과거 경찰청은 어린이 주거지와 교육시설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통학을 어린이통학버스로 규정했기 때문에 현장체험학습 등 비정기적인 운행의 경우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법제처의 해석에 따라 경찰청이 바뀐 지침을 내리자 수학여행 손님을 다 놓칠 상황이다.
울산 전세버스조합 관계자는 "한 대당 2억원이 넘는 버스를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 학교 행사에만 사용하기 위해 목돈을 들여 개조할 회사가 어디 있겠나"고 토로했다.
광주 조합 관계자는 "관련 기관이나 업체와 미리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뒤늦게 수습하는 것이 너무 심각하다"며 "이번 법도 처음에는 실효성 없는 일이라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실제로 시행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박수웅 강원도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은 "경찰, 교육청 등과 대책을 논의해도 뚜렷한 답이 없다"며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한 유예기간이라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변우열 김동민 김용태 김도윤 형민우 전지혜 김상연 김선형 김준범 오수희 양지웅 기자)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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