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70년째 제자리걸음인 대한민국 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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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3일,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새 시대가 열렸다.
제헌 6년 만에 형법이 탄생하며 현대 법치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형법 제251조(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1953년부터 변함없이 줄곧 제자리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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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형법을 사용한 것은 커다란 민족의 치욕이요 비애의 하나였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순풍양속을 토대로 하고 민주 우방의 모든 제도를 참고로 한 형법전을 우리가 만들어 그 시행을 보게 된 것은 지연의 감은 있으나 참으로 경하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고(故) 서상환 전 법무부장관, 1953년 10월 3일 담화 中
1953년 10월 3일,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새 시대가 열렸다. 제헌 6년 만에 형법이 탄생하며 현대 법치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줄곧 일본 형법을 의용해온 우리에겐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형법과 제정 당시 형법의 일치율은 놀라울 정도다. 지난 8일 폐지된 영아살해죄가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형법 제251조(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1953년부터 변함없이 줄곧 제자리를 지켜왔다. 강산이 7번은 바뀌고 천지가 개벽했지만, 많은 형법 조목이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내년에 70돌을 맞는 형사소송법은 또 어떤가. 원형을 지나치게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령 검찰의 피의자 구속 기간을 총 20일로 제한한 형사소송법 제203조는 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범죄 수법과 사안의 복잡성이나 피해 규모를 불문하고 구속 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해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끊임 없이 나왔음에도, 지금껏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업무방해 혐의 관련 재판도 개정 없는 형소법의 ‘구멍’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2019년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산관리인 김경록씨에게 지시해 PC 저장매체를 은닉했다. 여기엔 최 의원이 변호사였을 때 조 전 장관 아들에게 발급해준 인턴 확인서 등이 저장돼있었다. 검찰은 이를 김씨에게서 임의 제출 받았는데, 최 의원은 “‘실질적 피압수자’인 정 전 교수와 조 전 장관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사건 상고심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이 가능했던 건 형소법 제121조(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를 피의자에게까지 준용한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이 조항을 수사 단계에 적용하면 밀행성을 해칠 우려가 있음에도, 형소법의 미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법무부가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긴 하나,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잇따르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고 흉악범 전담 교도소를 만들기로 했다. 30년의 사형 집행 시효도 폐지됐다. 사형 선고를 받고 30년이 지나면 석방될 수 있었던 모순적 제도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2011년 폐지된 형사법개정특별심의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되살려 형법과 형소법을 대폭 손보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와 국회도 세상의 변화에 좀 더 전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추진하는 사후약방문 식의 법 개정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노자운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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