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 "흉악범죄 일벌백계"… 사형집행 요구 '봇물'
"미국·일본·중국·대만 등 주요국 매년 사형 집행
법무부 외교마찰 우려 '가석방 없는 종신형' 검토
최근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일벌백계를 위해서라도 사형집행을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이달 3일 경기도 성남 분당 서현역 주변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이 잇따르면서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잔인하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건발생 이틀 뒤인 19일 결국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형제 부활'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과 포털뉴스 댓글 창 등에는 '사형제 부활'을 촉구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분노 여론'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사형집행이 한국에서 부활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범죄자에게 사형이 선고되기는 하지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인 1997년 12월 30일 모두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이다.
법무부도 사형집행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지난달 국회에 출석해 사형집행에 대해 "여러 고려할 점이 많다"며 "사형제는 외교적 문제에서도 굉장히 강력해 집행하면 유럽연합(EU)과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잇단 '묻지마 칼부림'에 여권 내부에서도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사형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 명령을 내려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서 "가해자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 인권은 경시되는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다"라며 "흉악범에 한해서는 반드시 법대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에겐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며 "흉악범은 인간이 아니고, 거기에 인권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묻지마 살인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처로 엄벌한다는 단호한 입장 속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26일 도쿄 아키하바라 사건 사형수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08년 일본 도쿄에서 20대 청년 가토 도모히로가 2t 트럭을 몰고 행인을 덮친 뒤, 흉기를 휘둘러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게 한 대표적인 '묻지마 살인'으로 불린다. 일본은 앞서 지난 2021년 12월에도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던 기결수 3명을 처형했다.
중국도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 중 한 곳이다. 중국은 또 사형에 처하는 범죄 조항이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중국은 실제 매년 수천 명의 사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연방차원에서의 사형집행은 중지됐지만, 27개 주정부에서는 사형집행이 계속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지난달 28일 헤로인 30g을 밀매한 혐의로 45세 싱가포르 여성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싱가포르에서 여성에 대한 사형집행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26일에는 50g의 헤로인을 밀매한 혐의로 56세 남성도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만은 2016년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을 집행했다. 차이 총통 취임 열흘 전에는 2014년 5월 타이베이 지하철 흉기 난동을 벌이며 4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20대 살인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현재 국내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집행 사형수는 연쇄살인마 유영철과 강호순 등을 포함해 59명이 있다. 유영철은 지난 2004년 7월 부녀자, 지적 장애인 등 무고한 시민 21명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부녀자 8명을 살해하고 장모와 부인까지 살해했다.
사형수들의 법적 신분은 형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여서 '미결수'다. 따라서 다른 미결수들과 똑같이 매일 면회를 할 수 있고 노역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감형 등으로 출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희망도 없다. 이렇다 보니 사형수들은 수형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둔기 등을 이용해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 중상을 입힌 사형수 정남규는 2009년 11월 옥중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니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는 말을 내뱉는 등 최소한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최근 '묻지마 흉기난동'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대안으로 무기징역과 사형 집행의 중간단계인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0월 발의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형법 등 법률에서 규정한 사형을 삭제하는 대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시 수형자 영구 수용에 드는 비용만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앞서 법무부가 사형수를 비롯한 재소자 한 명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1년간 3000만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행법은 무기징역 수형자가 복역한 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반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되면 수형자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구금된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데다, EU(유럽연합)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물론 국내 종교단체들도 정부를 향해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시절 법무부는 사형집행을 검토했으나 외교부 등의 반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시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했다. EU는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는 회원국으로 받지 않고 사형집행 국가와는 FTA도 맺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흉기난동처럼 흉악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사형을 다시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헌재는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사형제 위헌 심판을 진행 중이다. 사형제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두 차례 오르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 합헌 결정이었다. 사형은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극악한 범죄를 대상으로 한 정당한 응보를 통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합헌과 위헌 의견은 1996년 7 대 2에서 2010년 5 대 4로 위헌 의견이 늘어났다. 헌재는 현재 세 번째로 사형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한편 국제앰네스티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연례 사형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말 기준 108개 국가가 법적 사형제를 폐지한 상태다. '실질적 폐지국'까지 합하면 모두 144개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 외에 사형제 유지 국가는 55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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