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갇힐 수 있다, 끔찍한 사이버 지옥’…영화 ‘타겟’

강푸른 2023. 8. 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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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겟’의 한 장면. 사진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나는 오늘 살인자와 중고거래를 했다.' 30일 개봉을 앞둔 스릴러 영화 '타겟'의 홍보 문구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을 자극합니다. 익명 뒤에 숨은 상대가 어떤 악의를 감춘 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지요. 영화 '타겟'은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의 거래액 규모가 수조 원에 이르는 오늘 한국의 사회상을 반영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함을 전달합니다.

배우 신혜선이 연기하는 '타겟'의 주인공 '수현'은 우연히 중고거래 어플리케이션에서 세탁기 사기를 당하며 사건에 휘말립니다. 고장 난 물건을 보낸 상대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인터넷에 사기꾼이니 주의하라는 글을 올렸거든요. 하지만 사기꾼 '그놈'은 오히려 피해자 수현의 개인 정보를 토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온갖 보복 행위에 나섭니다.

사건 사고 기사를 자주 읽거나,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수현의 집으로 수십 만 원어치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심지어 '초대남' 모집 글을 올려 불안에 떨게 하는 '그놈'의 수법이 모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이버 지옥'에 갇혀 절망하는 수현의 모습에선 소위 'N번방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영화의 밑바탕이 된 건 2014년부터 활개를 친 '국내 최대 규모 온라인 물품 사기단' 강 모 씨 일당 사건입니다.

21일 영화 ‘타겟’의 주연을 맡은 신혜선 배우(왼쪽)와 박희곤 감독(오른쪽)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사동 스캔들'과 '명당' 등을 연출한 박희곤 감독은 2020년 1월 우연히 시사 프로그램과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합니다. 훈훈한 정이 오가는 줄만 알았던 중고 거래가 사실은 치밀한 조직 범죄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충격에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는데요.

그해 10월 경찰에 덜미를 잡히기 전까지, 강 씨는 피해자들이 자살을 시도할 만큼 6년간 악랄한 범죄를 이어갔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5천여 명, 피해액은 49억 원에 이르지만, 그 중에서도 감독의 눈에 띈 건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여성 피해자의 존재였습니다.

"제가 접한 사례에선 대부분 피해자가 범인의 의도대로 초반에 손해를 보고 포기하거나 협박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사례의 주인공이 여성분이었어요. 성별을 떠나 소위 강자라고 얘기하는 덩치 큰 남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가장 용감히 저항했다는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타겟’의 한 장면. 사진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렇게 해서 여성 주인공 '수현'이 결정됐고, '진취적인 인물이 차츰 무너져 가다가 후반부에 마지막 힘을 내는 과정을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로서 신혜선 씨가 만장일치로 캐스팅됐다는데요. 신 씨는 평범한 직장 여성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몰입의 여지를 높입니다.

일부 관객들에겐 집 주소가 노출돼 피해를 겪는 와중에도 거처를 옮기지 않는 수현의 모습이 답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증'에 따랐다는 게 감독의 설명입니다. "경찰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피해자들은 일이 그렇게까지 커질 줄 몰라서 대부분 이사 갈 생각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3자는 왜 상황을 객관적으로 못 보느냐고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실제 당사자들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감정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감독은 '철저하게 현실감을 느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자동차 추격전이나 범인과의 육탄전 같은 일반적 범죄 영화 장면들로 화면을 채우면서 평범하게 흘러갑니다. 빌라에서 혼자 사는 수현이 잇단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에선 같은 제작사의 영화 '도어락'(2018)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물, 공간 등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가 거꾸로 뒤집으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묘사할 땐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도 떠오릅니다. 두 작품처럼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면 무난하게 볼 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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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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