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내다판 CEO에…주가, 한 달 후까지도 악재
CEO 자사주 매각 한 달 후 주가 하락률 17%
#고무 발포제 제조사였던 금양은 박순혁 당시 홍보이사가 유튜브 등에서 배터리주를 추천하며 ‘배터리 아저씨’로 유명해지자, 주가가 급등했다. 덩달아 배터리(이차전지) 테마주로 묶였다. 이 회사 임원인 허재훈 상무는 지난달 27일 보유 주식 4만주를 매도해 60억6460만원을 챙겼다. 허 상무는 당시 주당 15만원 선에서 주식을 팔았는데, 이후 금양 주가는 급락해 22일 기준 12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초전도체주 테마주 서남이 상장 이래 최고가를 경신하자, 최대 주주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어플라이드)는 보유 중이던 서남 주식 200만주를 이달 10일 모두 시장에 팔았다. 어플라이드는 미국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한국법인이다. 주식 전량 매도로 어플라이드는 130억7936만원을 챙겼다. 어플라이드는 서남 주식을 주당 6200~6800원대에서 팔았는데, 현재 서남의 주가는 4800원대다.
‘박스피(박스+코스피)’ 장세가 길어지자 테마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루한 박스피와 달리 주가 변동 폭이 커 흐름만 잘 타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게 테마주의 특징이다. 테마주의 트렌드가 휙휙 바뀌자 노난 건 개인 투자자가 아닌 테마주로 묶인 회사의 임원과 최대 주주였다. 뜻밖의 횡재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사주를 팔아치웠다.
임원 등 경영진의 자사주 매각은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임원과 최대 주주가 자사주를 매도하는 건 순간이었지만, 주가에 미치는 악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주 100만주 이상을 한 번에 매각한 경우는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95건이었다. 본지가 이를 분석한 결과 CEO의 자사주 거래는 매각 바로 다음 거래일보다 일주일 뒤, 그리고 한 달 뒤 주가를 더 끌어내렸다.
CEO가 자사주를 내다 판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하락한 경우는 전체 95건 중 49건(51.57%)이었다. 이 수치는 시점을 넓힐수록 커졌다. CEO가 자사주를 매각한 날로부터 일주일 뒤 주가가 하락한 건은 57건(60%)이었으며, 한 달로 시계열을 넓히면 60건(63.15%)까지 증가했다. 자사주 매각에 따른 주가 하락 여진이 당일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달 이상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주가 후퇴 폭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매각 바로 다음 거래일엔 평균 6.37%, 매각 일주일 뒤엔 11.88%, 매각 한 달 뒤엔 17.28% 하락했다.
CEO가 자기 회사 주식을 처분하면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CEO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로서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CEO가 자사주를 매각하면 시장은 CEO가 회사의 주가가 당분간은 오를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인식한다. CEO마저도 등 돌린 회사에 일반 투자자가 붙을 리 만무하다.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게 통상적이다. ‘주요 임원과 최대 주주 자사주 매각=주가 하락’이 공식처럼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3월 국일제지의 주가는 CEO가 자사주를 판 바로 다음 거래일 28.81% 하락했고, 일주일 후 하락률은 58%에 달했다. 국일제지는 특수지와 산업용지를 만들어 파는 업체다. CEO가 자사주를 매각한 날 최우식 국일제지 대표는 디케이원에 보유 주식 중 3188만5000주를 주당 1118원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주가(전날 종가 1916원)를 고려하면 주식을 더 싸게 넘긴 것이다.
또 CEO가 매각한 지 3거래일 뒤 회사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냈다고 공시했다. 최 대표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담보로 290억원을 대출받은 것 역시 뒤늦게 알려졌다. CEO가 자사주를 팔자마자 귀신같이 악재가 쏟아진 것이다.
에스디생명공학도 마찬가지다. CEO는 지난 3월 7일 288만4770주를 팔았는데, 같은 달 22일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면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같은 달 27일엔 채무이행자금이 부족해 사채 원리금을 미지급했다고 공시했다. 미지급 원금은 131억원이었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부터 회사 임원과 최대 주주의 내부자 거래 사전 공시 제도 마련에 나섰으나, 진행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내부자가 자사주를 거래할 경우 거래하기 최소 30일 전에 거래 목적과 가격, 수량, 거래 예정 기간을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사후 공시 체계를 ‘사전+사후’ 공시로 확대 개편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려면 상임위원회, 법사위 통과 후 본회의에서 가결돼야 한다. 법 시행까지 단계가 많이 남아 있어 빨라야 내년께 시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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