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버린 사진이 묻는다···"예술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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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를 쓴 팔순의 노인이 맨발로 체조를 한다.
포커스가 나간 사진, 낙서에 가까운 끼적임이 가득한 오려 붙인 신문들···. 작가는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가 남긴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2007)'라는 어록을 스스로 입증해 왔다.
전시장 1층은 신문의 보도사진을 작업의 매체로 활용한 성능경의 대표 연작 '현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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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개념미술 개척한 선구자
현장 등 대표작 140여점 선보여
“이런 게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절모를 쓴 팔순의 노인이 맨발로 체조를 한다. ‘헉헉’ 뱉어내는 숨이 가빠 보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정하기만 하다. 그리고 관람객에게 말한다. “예술이 과연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답은 미궁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꼭 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생 ‘예술이 무엇이냐’ 물어온 이 작가는 한국의 1세대 전위 예술가 성능경(79)이다. 갤러리 현대가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진행하는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은 2010년 대 초반부터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해 온 갤러리현대와 ‘한국적 개념미술’을 개척한 작가가 함께 하는 첫 전시면서 미니 회고전이다. 작가의 평면 작품은 온통 ‘망친 작품’ 일색이다. 포커스가 나간 사진, 낙서에 가까운 끼적임이 가득한 오려 붙인 신문들···. 작가는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가 남긴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2007)’라는 어록을 스스로 입증해 왔다.
갤러리현대는 프리즈 서울·키아프 등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한국을 찾는 해외 손님들에게 성능경이란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그의 시대별 대표작 140여 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전시장 1층은 신문의 보도사진을 작업의 매체로 활용한 성능경의 대표 연작 ‘현장’을 볼 수 있다. 작가는 1979년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이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모든 종류의 신문 보도사진을 채집해 마이크로 렌즈로 접사 촬영했다. 그후 먹과 세필로 35mm 필름에 다양한 편집 기호를 추가해 확대 인화했다. 작가는 “신문 편집자가 제시하는 사진 해석을 무효화 하고 재해석하는 행위”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안방(2001)’과 ‘네 남매의 사진첩(1990)’은 이번 작품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망친 사진들'이다. 작가는 핀이 안 맞거나 실수로 셔텨가 눌려 찍힌 ‘언프로페셔널’한 사진을 10년 간 모아 왔고, 그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성능경은 지금은 흔하지만 사진에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편집하는 ‘개념 사진’이라는 카테고리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작가다. 국내 화단에 단색화가 가득하던 1970년 대에 매일 기사 신문만 오리는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라는 대중이 보기에 ‘저게 무슨 예술이야' 라고 생각할 만한 파격적인 작품을 들고 온 것. 이후 그는 지금은 ‘하트’라는 그림으로 유명해진 이건용 등과 함께 1970년 대를 주름잡은 실험미술 작가 반열에 오른다.
이미 미술계에서는 유명한 원로 작가이지만 그의 이름은 올해 들어 더욱 본격적으로 미술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달까지 진행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덕분이다. 성능경 뿐 야ㅏ니라 김구림, 이강소 등 한국의 전위적인 실험미술 작품을 조망한 이 전시는 오는 9월 1일부터 미국 뉴욕의 솔로몬R.구겐하임미술관에서 다시 열린다. 성능경 작가는 11월 17~18일 이곳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이건용(10월 13~14일), 김구림(12월 1~2일)등도 함께 한다. 이번 갤러리현대 전시는 국내 실험미술 작가들이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전 미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현대 본관에서.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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