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해체' 선전포고 같았던 이동관 청문회

정철운 기자 2023. 8. 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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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이렇게 많은 나라 없다" 민영화 시사
"노영방송 체질 개선" "정파 보도 교정" 등 예고
언론노조 "방송장악 쿠데타 완성하겠다는 협박만"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18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청문회는 '공영방송을 해체하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았다.

이 후보자는 “선진국 어느 나라도 공영방송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없다”며 “흔히 밖에서 노영방송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건들지 마라, 우리가 알아서 무조건 하겠다' 그러면서 편파적인 뉴스를 내보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유로운 정보 소통 이걸 위해서는 공영방송은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민영화란 표현은 별로 좋다고 보지 않습니다만 정보시장의 유통도 경쟁체제 속에서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라고 했다.

“YTN, KBS2 등 민영화는 재벌 자본가한테 준다는 소리다. 방송이 보수화될 것”이라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는 “미국은 다 민영방송이지만 색깔과 지향성이 모두 다르다”고 답했다. “어떤 형태든 YTN과 KBS2는 민영화가 답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거냐”는 질의에는 “지금 여기서 답할 성질은 아니라고 본다”며 즉답을 피했다. 현재 YTN은 대주주인 공기업이 지분 매각에 나섰고, KBS2TV는 올해 말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후보자는 TV수신료 폐지에 국민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며 “단순히 돈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런 방송을 왜 준조세를 내가면서 해야되느냐는 항의 표시다.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면 100% 자발적으로 내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가 없다. 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방만 경영, 부실 경영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아무리 공적자금을 투입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경영 윤리, 방송윤리, 정파적인 보도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시스템을 먼저 교정한 이후 필요하다면 지원도 강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TBS 운영 및 재정에 대한 서울시의 예산지원 중지 조치가 언론의 자유 제한 아니냐”(이정문 의원)는 서면질의에서 “가짜뉴스와 과도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 언론에 대해 공적 지원을 축소한다고 하여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에 비춰보면 이해하기 쉽다.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이 후보자는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KBS·MBC 방만 경영과 공정성은 회복됐다고 보느냐”는 변재일 의원 질의에 “현저하게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제도 자체도 일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수신료가 상당히 독이었다”고 답했다. 공적 재원 축소, 또는 채널 축소가 공영방송의 방만 경영공정성 회복을 위한 조치라고 풀이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방송사 노조에 대한 반감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민형배 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며 “(이명박 정부 시절) 기대만큼의 공정성 확보가 안 된 것은 그 뿌리 깊은 노영방송 체질이 개선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변재일 의원 질의 답변 도중에도 “지금 공영방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노조로부터의 독립”이라고 했다. 이는 공영방송 내 노조 무력화를 시사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공정방송=근로조건'이란 판례가 확립된 한국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권력 편향 보도를 견제해온 노조를 무력화해 공영방송을 '형해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최우선 임무라고 천명하는 듯했다. 이명박정부가 KBSMBCYTN '장악'에 나섰으나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정권이 바뀌자 공영방송이 정상화되는 과정을 경험한 후보자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방통위가 직접 방송사 경영진을 문책하겠다는 위험한 인식도 나왔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질의 중 “솔직히 공영방송을 폐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니냐. 형식적으로 맨날 조건부 재허가하면 뭐하나”라며 “과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포함이 돼 있었다, KBS 같은 경우는. 문제가 생기면 경영진을 문책하는 게 맞다”고 말한 것. 이 후보자는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질의 중에서도 “(재허가재승인제도보다) 경영진 문책이 오히려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이동관 후보자는 “정권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에게 유익하고 올바르고 공정한 내용을 전달해서 국가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공영방송의 기본 자세”라고 말했다. 또 “왼쪽으로 기울어 있는 방송진영을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똑바로 평평한 곳에서 공정하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 태도”라고 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방송장악 논란에 비춰볼 때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상황이다.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을 현행법처럼 여야 정치권에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인가. 혹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정필모 의원)라는 서면질의에는 “이사회 구성을 정치권이 좌우하기보다는 다양한 집단을 대변하는 전문성을 가진 이사회가 구성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도 정 의원의 관련 질의에 “모든 정권이 그렇게 해 왔는데 가능하면 그것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정필모 의원이 거듭 강조하자 이 후보자는 “왜 앞의 정부에서 그것 못 했나요, 그러면?”이라고 되묻기도 했다.

한편 본회의 의결만 앞둔 '공영방송 정치독립법'에 대한 입장(김병욱 의원)을 묻는 서면질의에는 “지배구조 개선은 공영방송 제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항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야가 합의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종편 재승인 심사 관련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서는 “민간방송의 경우에는 굳이 정기적으로 재승인 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는 명확한 찬성 입장을 냈다. “가짜뉴스에 대해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징벌적 처벌을 하자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변재일 의원 질의에는 “저는 왜 지난 정부에서 하실 수 있을 때 그런 개혁 조치에 버금가는 일들을 안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좀 한다. 가짜뉴스를 퍼 나르거나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과감한 징벌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변 의원이 “가짜뉴스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라고 묻자 그는 “저는 그 말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답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2일 성명에서 이 후보자의 청문회 발언을 가리켜 “그의 입에서는 방통위의 역할, 조직 운영 비전, 합의제 기구로서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그 어떤 입장도 없었다. 오직 공영방송 장악의 야욕과 '가짜뉴스'를 앞세운 언론 통제의 선전포고만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반헌법과 불법으로 점철된 방송장악보다 더한 방송장악 쿠데타를 완성하겠다는 협박만이 메아리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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