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용기 배달’인데 일회용품 왔다?…“취지 좋지만 곳곳에 허점”
다회용기 부피 크고 발열 쉬워 효율성 떨어진다는 의견도
친환경 취지는 공감하지만 하루 평균 주문 1~2건 그쳐
서울시 “매장 사업주들 의견 경청해 보완책 마련 중”
서울 관악구의 한 김치찌개 식당은 고객이 다회용기 배달 주문을 선택해도 일회용품을 일부 지급한다. 김치찌개를 포장할 때는 다회용기를 쓰지만 밥이나 반찬을 담을 작은 용량의 용기는 일회용품을 쓰는 식이다. 규격에 맞는 다회용기가 없어서다. ‘반쪽짜리’ 다회용기 배달인 셈이다.
이 식당은 아예 다회용기 배달을 포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다회용기 배달을 위해서는 배달 1회당 수거·세척 비용 400원이 발생하는데, 현재는 서울시가 부담하는 구조지만 지원이 사라질 경우 결국엔 점주가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주 김모씨는 “비용 부담도 있고 활용하기도 불편한데, 주문이 많이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1년이 넘게 다회용기 배달을 운영했지만, 하루에 2건 남짓 접수된다”고 했다.
서울시가 작년 4월부터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땡겨요 등 배달 플랫폼과 업무 협약을 맺고 다회용기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정책에 허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취지는 좋지만, 비용 부담으로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내 다회용기 주문 건수는 9777건으로 지난 1월(7324건) 대비 30% 증가했다. 올해 들어선 동작·송파·성동·용산·마포구에서도 사업을 시작해 다회용기를 이용하는 식당도 지난달 기준 969곳으로 늘었다.
◇ 세금 25억원 투입하지만, 식당 사정 고려 없이 다회용기 제공
다회용기 배달 건수 자체는 증가 추세이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회용기 배달 주문이 들어와도 여전히 일부 음식은 일회용품에 담아 배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음식점이 다회용기 배달 주문에도 일회용기를 일부 사용하는 이유는 규격에 맞는 다회용기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연간 25억5000만원의 예산을 다회용기 공급업체에 지원하면 업체는 식당이 다회용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쿠폰’을 발행한다. 하지만 이 쿠폰을 사용해 제공받은 다회용기 크기는 업종과 관계 없이 동일해 일부 음식을 담을 때는 일회용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 예산 지원이 끊길 경우 다회용기 수거·세척 비용이 식당에게 떠넘겨질 수 있다는 점도 다회용기 배달 주문을 받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서울시 지원이 없다면 식당은 배달된 다회용기를 다시 수거해 세척하는 비용으로 배달 1회당 440원을 지불해야 한다. 찌개류 2인분을 담는 데 사용되는 플라스틱 일회용기는 개당 380~400원이라 사업성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는 게 자영업자들 설명이다.
관악구에서 쌈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3)씨는 “다회용기가 제공되긴 하지만, 모든 식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서 공기밥 등 그릇은 일회용기로 나간다”며 “왜 전부 다 다회용기가 아닌지 되물어보는 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별도의 조치는 없었다”며 “밥이나 반찬은 원래 쓰던 일회용기에 담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 “취지는 공감하지만…배달에는 비효율적”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든 다회용기가 배달을 하는 데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배달 전문업체는 일반 식당과 달리 공간이 협소해 부피가 큰 다회용기를 보관할 공간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또 무게가 무겁고 뜨거운 음식물을 담을 경우 용기가 빨리 뜨거워지는 특성도 있어 일회용기 포장보다 시간이 더 소모돼 불편함이 많다는 호소까지 나온다.
관악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조모(34)씨는 “일회용기와 비교하면 다회용기는 부피가 커 둘 곳이 없다”며 “철제다 보니 뜨거운 음료나 탄산음료를 밀봉해 배달할 때 개봉 시 터지는 경우도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올해 1월부터 다회용기 배달을 시작했는데, 총 주문 건수가 이번 달 18일까지 8개월 동안 40건도 되지 않는다”며 “하루 평균 20~30건의 일회용기 주문이 들어오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뿐만 아니라 배달앱 측에서도 다회용기 사용을 독려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일회용기 사용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단순히 구색 맞추기 식으로 다회용기 배달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다회용기 사용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배달앱 자체적으로 캠페인이나 이벤트 빈도를 높여야 한다”며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서울시나 다회용기 전문업체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사업주들의 의견을 들어 보완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적절한 규격의 식기 부족, 홍보 활성화 등 매장 사업주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해 다회용기 제공업체와 협의해 개선하고 있다”며 “다회용기 홍보와 관련해서도 배달앱과의 협업은 물론, 서울시 자체적으로도 온라인 콘텐츠 제작, 간접 광고(PPL) 게시 등 다회용기 배달 사업을 알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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