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플] 김광현, 말러‧베토벤‧오페라‧김호중까지…폭넓은 스펙트럼

조성진 기자 2023. 8. 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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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원주시향 최연소 상임지휘자‧음악감독
교향곡서 오페라, 발레음악까지 재능 발휘
김호중 ‘더 클래식 앨범’ 오케스트라 지휘
“지휘자는 본인만의 소리 판타지 갖고 있어야”
말러 가장 좋아해…브루크너는 50세때부터 지휘
부모형제 아내까지, ‘성골’ 음악가 집안
“클래식 대중화되려면 대중이 클래식화돼야”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악 접하며 성장
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지휘계 재원
30년째 LG트윈스 열혈팬
델 모나코, 디 스테파노, 코렐리 가장 좋아해
10년째 ‘정동교회’ 성가대 지휘자이기도
사진=조성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트바로티' 김호중이 지난 2020년 워너뮤직클래식에서 발매한 '더 클래식 앨범'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음악을 접하는 방식이 피지컬 앨범에서 온라인 음원으로 바뀐 지금 1만 장만 돌파해도 클래식 음반 분야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김호중 '더 클래식 앨범'은 무려 54만 장(워너뮤직코리아 집계 기준)이란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전 세계 클래식 음반시장에서 김호중을 주목했고 또 다른 대형 글로벌 음반/기획사들이 김호중과 다음 작품을 도모하고 싶게 만들었다.

'더 클래식 앨범'은 성악과 대중가요를 오가며 탁월한 소리 연출과 음악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김호중의 역량을 한껏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테너로서 김호중만의 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코리아쿱 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 연주도 놓칠 수 없는 감상 포인트다. 김호중의 발성 관련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2232일 자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을 참조하면 된다.

김호중의 '더 클래식 앨범'2020년 당시 이미 슈퍼스타였던 그가 입대를 앞두고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짧은 시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 완성됐다.

왼쪽부터 워너뮤직코리아 조희경 이사, 김호중, 김광현 감독

당시 이 앨범 진행제작을 총괄한 워너뮤직코리아 조희경 이사는, 실력과 대중성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완벽하게 잡은 김호중과 함께 할 지휘자로 누가 좋을까 고민했다. 악단 연주의 꽃이랄 수 있는 심포니 지휘를 잘하는 것만으론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더 클래식 앨범'은 정통 오페라 아리아부터 칸초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성악가의 결을 잘 살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극에 달하던 때라 악단과 녹음장소 섭외 등 어려운 숙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조희경 이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코리아쿱 오케스트라' 라성욱 대표에게 "현재 국내 오페라/성악 지휘 쪽 베스트를 추천해달라"고 했고 라성욱 대표는 "당연히 김광현"이라고 추천했다. 라성욱 대표 또한 독일 명문 한스아이슬러 음대 출신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다. 여기에 세계적인 톤 마이스터 최진 감독이 합류했다. 말 그대로 김호중 '더클래식앨범' 작업엔 국내 최고의 음악가들이 총동원된 것이다. 온라인 음원 시대에서 54만 장이란 경이적인 클래식 앨범 판매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휘자 김광현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가 교향곡뿐 아니라 오페라/성악에 특화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이라는, 양립하게 어려운 클래식의 숙제까지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지혜까지.

강남 서초동에서 만난 지휘자 김광현은 시종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품성이 돋보였다.

김호중의 '더 클래식 앨범'은 조수미 이후 국내 클래식 저변 확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자연스럽게 김호중을 주제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김호중과 처음 만날 때 이미 '이 사람은 (천생)성악가구나'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존 서덜랜드같이 하관이 눈에 띄게 발달된 성악가들이 있듯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게선 남다른 외모(신체적 구조)가 느껴집니다. 김호중도 이런 경우였어요. 테너로서 소리를 딱 잡고 부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더 클래식 앨범'을 녹음하며 김광현 지휘자가 김호중에게 가장 크게 놀란 게 있다.

"김호중은 별다른(특별한) 워밍업도 없이 곧바로 소리를 냈어요. 오죽했으면 '우와, 저 친구는 입만 열면 바로 소리가 나오네'라고 했을까요."

"김호중은 거침이 없어요. 못하는게 없이 모든 걸 다 부를 줄 압니다."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광현 원주시향 상임지휘자음악감독은 예원학교-서울예고-서울대라는 명문 음악코스를 거쳤다. 거기에 아버지 김명엽은 국립합창단장 예술감독 및 서울시합창단장 등을 두루 거친 한국 합창지휘계의 거물이다. 어머니도 성악 전공자이며 아내 또한 성악 반주 전문 피아니스트다, 김광현 동생도 테너(스웨덴 왕립합창단)이고 동생의 부인(바이올린)도 런던필하모닉에서 연주했다. 한마디로 '성골' 음악가 집안인 것이다.

김광현은 예원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진짜 꿈은 지휘자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공연을 접했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지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초등학교 1~2학년 무렵 베토벤 교향곡 9번 공연을 보러 갔다. 당연히 이날도 아버지가 지휘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9번 교향곡을 지휘한 걸 보고 서운한 마음에 펑펑 울고 말았다. 어린 광현은 이때부터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겠다며 심포니와 합창음악 모두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자가 될 거라 결심했다.

초등학교 때 비제 '카르멘'(지휘 임원식) 공연은 어린 광현에게 충격을 줄 만큼 인상적이었다. 오페라 지휘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할 만큼. 아버지는 자신이 지휘하는 모든 공연에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현장실습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김명엽은 집에 있을 땐 항상 오페라/성악곡을 틀어놓고 있어서 어린 광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클래식음악을 다양하게 접하며 성장했다. 당시 아버지는 LD(레이저디스크) 수집도 열심히 했는데, 어린 광현은 아버지와 함께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공연 영상을 많이 접했다.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 '3테너'도 이즈음 많이 본 영상 중 하나다. 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메트로폴리탄 '투란도트' 공연도 어린 광현에게 평생에 남을 감동을 줬다. 이 영상을 너무 좋아했던 그는 예원학교 입시 전날까지 긴장을 풀기 위해 '투란도트' 영상을 봤을 정도다.

시간이 지나 2019년 그는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투란도트'(코리아쿱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어릴 때 꿈을 이뤘다. '알프레드 김'으로 유명한 테너 김재형이 함께 했다. 물론 프로페셔널 지휘자로서 본격 오페라 데뷔작은 2018'라보엠'이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학사)에 이어 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음대 대학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물론 이때에도 그는 부전공으로 계속 성악을 공부했다. 슈투트가르트 음대를 택한 것도 자신이 존경하는 세계적인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자'가 슈투트가르트 음대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김광현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테너 아리아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성악이 몸에 있고 성악가들의 관점에서 가장 잘 이해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는 성악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휘자가 됐다. 특정 악단과 오페라성악을 연주하면 계속 그를 지휘자로 찾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김광현은 3000장 넘는 CD를 소장하고 있는데, 성악과 지휘자 음반이 다수를 차지한다. 마리오 델 모나코, 주세페 디 스테파노, 프랑코 코렐리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테너로 이들이 참여했던 모든 음반을 컬렉션했을 정도다. 푸치니 '투란도트'와 조르다노 '안드레아 쉐니에' 두 작품을 음악사에 남을 명연으로 지휘하고 싶은 것도 바람 중 하나다.

2014년 말 원주시립교향악단(원주시향)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에 선임됐는데 이때 그의 나이 33, 최연소 국공립 음악 단체 수장이란 기록을 세웠다.안 그래도 원주시향은 임헌정, 정치용, 박영민 등이 거쳐 간 지방 시향의 명문 중 하나인데, 여기에 최연소 젊은 수장이 취임했으니 세간의 화제가 된 건 당연하다.

김광현 감독은 20151월부터 202112월까지 악단을 이끌며 원주시향의 존재감을 더욱 탄탄히 했다. 그는 정기 연주회(정통 심포니 위주)와 기획 연주회(신선하고 파격적인 연주와 레퍼토리)로 구분해 원주시향 무대를 꾸몄으며 임기 종료까지 다양한 기획을 통해 객석점유율과 정기회원 수를 두 배 이상 끌어 올렸다. 오케스트라 버전(바인가르트너)의 베토벤 '하머클라비어(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국내 초연하기도 했다. 원주시향 상임지휘자 취임 첫 공연에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이진상 협연)으로 매진시켰고, 2018년 교향악 축제에선 국내 공연 통틀어 원주시향을 유료 관객 수 3위에 랭크시키기도 했다.

"제가 하는 모든 공연은 공연 전 무대에 나와 관객에게 곡해설을 먼저 해줍니다. 단지 클래식 뒷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이해를 위해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설명해 주는 것이죠."

원주시향 시절 말러 교향곡 공연 때에도 무대 화면에 5분 간격으로 자막을 띄워 대중의 이해를 도모코자 했다.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공연과 함께 한편의 영화감상까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휘자로서 김광현이 곡 해설을 중요시하게 된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2012년부터 2014년 말까지 경기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재직하며 지방 공연을 많이 했다. 2013년에 있은 교도소 투어는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수감자 중엔 클래식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줘야겠다고 여겼고 이해를 돕기 위해 곡해설을 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김광현 경기필하모닉은 그리그 '페르귄트',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등을 연주했는데, 기립박수는 물론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는 제소자까지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대중이 더욱 효과적으로 곡에 몰입할 수 있게끔 곡 해설을 먼저 하고 공연을 시작하는 방식을 취하겠다고 결심했다.

"클래식은 절대로 대중화되기 힘듭니다. 특히 한국은 학교에서 음악 시간이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매일 같이 클래식을 들으며 자란 유럽 현지인과 비교할 순 없죠. 클래식이 대중화되려면 대중이 클래식화돼야 합니다. 저는 백종원 님을 존경합니다. 요리를 대중의 영역으로 가져온 분이죠. 백종원 님은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요리도 알고 먹어야 맛있다'고 강조했는데, 클래식도 알고 들어야 더 재미있습니다. 자막이나 대사가 없이 연주만 나오므로 이해하기에 더 힘들 수 있는 게 클래식이기도 하고요. 본인이 겪었을 법한 내용이 가사에 있는 대중가요는 그래서 더 친숙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죠. 따라서 클래식 공연 전 대중에게 특정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공연하면 대중은 그 설명을 토대로 각자 상상(판타지)을 하며 감상해 클래식을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교향악단은 예술성(전문성) 50% 대중성 50%를 같이 가지고 운영돼야 합니다. 이것은 클래식 전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어요."

2018년 원주시향 야외음악회에서 K팝 심포니를 무대에 올려 5000명 넘는 관객이 운집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김광현 원주시향은 2018년 국내 가요를 중심으로 야외음악회를 열었다.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K팝을 10년 단위로 잘라 1악장부터 5악장까지 구성한 'K팝 심포니'를 만들어 연주한 것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가요 멜로디가 심포니 형태로 웅장하게 흐르는 것도 매력이었지만 특히 공연 당일 손홍민 군 면제 여부로 초미의 관심거리가 되던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야외로 몰릴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다. 그래서 경기가 시작되기 10분 전 공연을 종료하고 경기 응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형태를 취했다. 김 감독의 아이디어였고, 공연은 5000명이 넘는 관객이 운집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협주곡의 밤'을 통해 지방의 음악 영재들과도 교류했다. 첼리스트 한재민도 당시 초등학생 영재로 협연했던 인물 중 하나다.

원주시향을 이끌며 1000명이 넘는 규모의 '시향사랑'이란 원주시립교향악단 팬클럽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시향사랑' 회장은 김헌국 원장(정형외과)으로, 그는 열혈 음악애호가이자 와인에도 조예가 깊다.

"지휘할 땐 항상 그 작품에 가장 잘 맞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작곡가가 원했던 사운드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저는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두려고 하는 것이죠. 리허설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좋은 오케스트라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란 말이 있듯이 지휘자는 단원들을 좋게끔 만들어줘야 합니다. 단원들이 좋은 기분에서 연주해야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고 단원들이 행복해야 관객들도 행복해지는 것이니까요."

"리허설 과정도 소통입니다. 작품을 연주할 때 내가 원하는 걸 단원들로부터 끌어내려면 합당한 근거를 토대로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부터 먼저 갖게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특정 심포니를 연주하기 전 철저히 공부해 단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악보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고 그 악보를 통해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며 단원들로 하여금 그 소리를 끌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지휘자는 소리에 대한 정확한 목표 의식과 판타지, 즉 소리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야 합니다. 단원들이 즐거운 기분으로 지휘자와 함께 연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지휘자(리더)의 역할이죠."

원주시향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 재임 동안 김광현만의 지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공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4번과 모차르트 '하프너' 교향곡,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꼽았다.

2021년에 지휘한 베토벤 4번은 교향곡임에도 편성이 작은 게 특징이다. 베토벤 교향곡은 악단의 앙상블이 좋아야만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휘자들이 악단을 처음 맡을 때 제일 먼저 연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김광현 감독은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 베토벤 4번을 마지막 연주로 선보였다. 베토벤 4번은 연주 시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모든 게 드러날 정도라 9개의 베토벤 교향곡 중에서도 무대에서 접할 기회가 매우 적음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7년 동안 원주시향을 지휘하며 갈고 다듬은 자신만의 원주시향 앙상블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 곡을 택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차이콥스키도 그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 꾸준히 연주하고 있다.

김광현 감독은 말러를 제일 좋아한다. 원주시향 20주년이 되던 2017년에 말러 1번과 2번 교향곡을 연주했고 이후 4번과 5번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2번과 3번이다. 2번은 특히, 대학 1학년 때 예술의전당에서 있은 부천필하모닉(임헌정 지휘)'말러 사이클' 때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말러 하면 반드시 브루크너란 이름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쩌면 "말러냐 브루크너냐""짜장이냐 짬뽕이냐"처럼 어려운 화두다. 그런데 김광현 지휘자는 말러 작품은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음에도 브루크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거장 블룸슈테트로부터 브루크너 8번 교향곡을 텍스트로 레슨을 받았음에도.

"브루크너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곡가지만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 보니 아직 지휘할 생각이 없어요. 인생의 연륜내공이 더 쌓여 50살쯤 지휘할 예정입니다."

그는 블룸슈테트 외에 샤를(샤를르) 뒤투와도 사사했다. 2004년 일본 '미야자키 페스티벌' 때 샤를 뒤뜨와 마스터클래스에 뽑혀 1주일간 샤를 뒤투와에게 레슨을 받았던 것. 뒤투와는 김광현에게 "캐릭터 잘 뽑아낸다"고 평하며 차세대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높이 샀다.

"샤를 뒤뜨와는 오케스트라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지휘자였어요. 특히 프랑스 지휘자 쪽에 강했는데 '환상교향곡'이 백미였죠. 그가 지휘봉을 잡고 단 몇 번 만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실제로 바뀌는 걸 보며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2005년 마스터클래스에서 정명훈과 함께.

20대 시절인 2005년엔 정명훈 마스터클래스에도 참가했다. 홍석원(광주시향), 서진(계명대), 김예훈(과천시향) 등의 지휘자가 당시 이 마스터클래스를 함께 한 사람들이다. 김광현은 정명훈으로부터 톤 칼라, 소리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정명훈의 말 한마디에 인천시향 단원들의 소리가 변하는 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명훈은 인천시향 단원들에게 특정 코드를 지정해주고 "가장 좋은 소리를 내세요"라고 짧게 주문했다. 각 단원끼리 밸런스를 듣게 하는 방식의 티칭이다. 잠시후 그 한 코드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정명훈은 김광현에게 "이렇게 (지휘)하세요"라고 말했다. 20대 김광현에겐 소리의 퀄리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김광현 감독은 '정명훈 키즈'였던 시절 그가 지휘하는 말러 9(서울시향)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9번에선 4악장 스트링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데 정명훈은 꽉 찬 소리 구현으로 이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연출한 것이다. 기립박수를 받은 기념비적인 공연이다보니 김광현 외에 적지 않은 차세대 지휘자들이 이 공연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휘자로서 김광현에게 잊지 못할 선생은인은 아버지와 임헌정, 김덕기 교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김광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공연과 지휘를 접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사부인 셈이다.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 임헌정 교수로부턴 심포니를 해석하는 법을, 김덕기 교수에겐 오페라 전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임헌정 교수님은 하나의 곡엔 하나의 클라이막스가 있다는 '원 피스 원 클라이막스'를 강조하셨어요. 사람을 흥분시키지 말고 감동을 줘야 한다는 거죠. 흥분의 다음 단계가 감동인데 대부분 흥분시키고 끝내지만, 흥분은 열광으로 끝인 반면 감동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음악가는 이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게 임헌정 교수님의 지론이었습니다."

두 교수는 제자 김광현에게 항상 최고 점수를 줬다. 2006년 서울대 60주년을 기념해 말러 8'천인' 교향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 이때 임헌정 교수는 대학 4학년인 김광현을 부지휘자로 임명해 연주하게 할 정도로 그 역량을 높이 샀다. 김광현은 60주년 기념 공연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와 말러 8번을 지휘할 정도로 두 교수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두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이 두 분을 만난 건 제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을 지휘하고 있는 김광현.

임헌정, 김덕기 교수 외에 한 명을 더 꼽자면 슈투트가르트 음대 페어 보린(Per Borin) 교수다. 저 유명한 요르마 파눌라 제자인 페어 보린으로부터 그는 악보대로 지휘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시벨리우스 등 정통 핀란드 지휘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페어 보린은, 다이내믹과 표현 등 각기 다른 여러 지휘방식을 상세하게 가르쳤다. 특정 곡의 어떤 부분을 지휘할 땐 오른손의 4~5개의 특정 관절을 사용하며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보린 교수는 그에게 파눌라 학파만의 독보적이고 정교한 지휘법을 전수했다.

김광현 지휘자는 그간 함께했던 많은 협연자 중에서도 피아니스트론 손열음과 손민수를 가장 인상적인 협연자로 꼽았고 최근 협연자 중에선 박재홍을 언급했다. 2022KBS교향악단 지휘 때 박재홍은 곡을 해석(분석)하는 역량이 남달라서 그에게 "지휘를 해보라"고 말할 정도였다. 협연하다 보면 테크닉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텍스처까지 견지하는 사람도 있는데 박재홍은 그만의 목표 지향점이 있었던 것. 이런 건 손열음과 손민수 협연 때에도 똑같이 느꼈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에 대한 추억도 남다르다. 서울대 기악과 재학시절부터 주목받던 김봄소리는 오케스트라 악장에 이어 솔리스트로 나올 즈음 원주시향과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를 협연했다. 이 곡은 악장의 솔로가 매우 중요한데 당시 원주시향엔 악장이 없을 때였다. 그래서 김광현 감독은 김봄소리에게 "협연자만큼의 페이를 줄 테니 '셰에라자드' 악장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여기에 공연 전반부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주앙'까지 연주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원주시향은 2016년 김봄소리와 협연 무대를 꾸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사실, 유명 솔로이스트가 악장으로 와서 악단 자리에 앉아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봄소리가 흔쾌히 응해준 데 대해 김광현 지휘자는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는 김봄소리에 대한 고마움으로 2017년 원주시향 공연에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 협연자로 김봄소리를 초대해 메인무대를 꾸몄다.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호수' 공연후 커튼콜.

김광현은 지금까지 여러 시립오케스트라 외에 국립심포니, 코리아쿱 등등 많은 악단을 지휘했다. 그 많은 악단과 함께 하면서 개인적으론 국립심포니와 코리아쿱과 궁합이 잘 맞았다고 한다. 이 두 악단과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몇차례 발레 공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김광현 감독은 '돈키호테', '오네긴''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프로코피예프(프로코피에프)'로미오와 줄리엣''신데렐라'까지 여러 발레 공연을 지휘했다. 발레 공연 지휘를 하며 무용수들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다.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는 심포닉하게 잘 작곡된 작품이라 특히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국립심포니와 코리아쿱이 너무 잘해줬고 제 개인적으로도 이 악단들과 궁합도 잘 맞아서 만족스럽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죠."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발레 작품은 하차투리안 '스파르타쿠스'입니다. 교향악적으로도 너무 뛰어난 작품이죠. 저는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대중성보다 그 작품이 지닌 음악적 가치를 먼저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스파르타쿠스'는 꼭 무대에 올려보고 싶어요."

전승현(아틸라 전), 사무엘 윤 등 유명 성악가들은 김광현 지휘자에게 이제 바그너를 할 때가 됐다며 지휘를 권하기도 한다. 바그너 서곡은 여러 차례 했지만 전곡 시도는 여건이 된다면 꼭 해보고 싶어 한다. "바그너는 스트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브라스가 정말 탄탄해야 한다"며 바그너에 대한 애정과 포부를 드러냈다.

원주시향 이후 김광현 지휘자는 2년째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지휘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작년의 경우 60회 이상 지휘할 정도로 바빴다. 3테너 오마주 공연을 비롯해 '라보엠' 공연, 10'돈키호테'부터 12월 광주시향 지휘까지 남은 4개월 스케줄도 틈이 없을 정도다. 많은 공연을 지휘할 때마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는 스타일이다 보니 집에 있을 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30년째 LG트윈스 팬인 그는 가족과 함께 야구장을 즐겨 찾기도 한다.

김광현 감독은 슈투트가르트 음대 유학 시절 만난 피아니스트 아내와 2년간 연애하다가 2010년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6학년인 첫째 딸은 미술에 소질이 있고, 성악에 재능을 보이는 3학년 둘째는 얼마전 KBS '누가누가잘하나'에 선발돼 TV에 나오기도 했다.

10년째 정동교회 성가대(삼부 찬양대) 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그는 야구 매니아, 특히 30년 넘는 LG트윈스 팬이다. 가족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서 야구경기 관람하길 좋아한다. 두 딸이 야구 경기장에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고. 음악가(지휘자)로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 야구 경기를 통해서나마 소통과 추억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에서도 사랑이 드러나야 하며 그러한 사랑을 어떠한 소리로 표현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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