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감염병과 위생의 중요성
● 인류 역사를 함께 한 감염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 SFTS), 지카바이러스감염증,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새로 나타난 감염병도 있지만 결핵, 두창(천연두), 한센병, 말라리아와 같이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감염병도 있다.
감염이란 핵이 없는 단세포 원핵생물이 핵을 가진 진핵생물로 침입하는 과정이고 이로 인해 병이 생기면 감염병이라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약 46억년 전 지구가 생겨나고 그로부터 약 10억 년이 지난 후 단세포 생물이 처음 생겨났다.
그 후로 진화를 거듭하여 다세포 생물이 생겨나는 동안 단세포 생물은 다세포 생물에 침입하여 생존하고자 했고 다세포 생물은 침입한 단세포 생물을 퇴치하기 위한 면역 기능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사람이 생겨나기 전에도 동물은 감염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미생물 감염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단세포 미생물은 수시로 변이가 발생하면서 성질이 변하므로 병을 일으키지 않던 미생물이 감염병을 일으키는 일도 수시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사람의 면역으로 버틸 수 없는 강력한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집단으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지만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 시절에는 원인과 치료법을 모른 채 경험적으로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이 치명적 상태에 이를 가능성은 지난 3년간 꾸준히 낮아졌다. 이런 현상은 감염병이 유행하는 경우 흔히 볼 수 있다. 숙주가 치명적이라면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생존과 전파 기회를 잃게 되므로 미생물 병원체 입장에서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의학지식이 충분치 않던 오래 전에 감염병이 유행한 경우 당시 기록을 토대로 어떤 감염병인지를 추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록 부실은 물론 병에 의한 증상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학자들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독소에 의한 중독,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페스트, 출혈열, 홍역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사람들의 접촉이 많지 않았으므로 감염병 대유행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지역적으로 두창, 한센병, 페스트, 독감 등이 수시로 유행하면서 감염병이 인류 역사에 동반자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사람의 수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감염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 감염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고?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과시했고 카이사르(시저)가 로마의 도서관장으로 임명하기도 한 로마의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 116–27)는 율리우스력이 나오기 전에 이미 달력을 만들었고 문학 작품을 비롯하여 많은 기록을 남긴 학자다.
그는 로마어로 나쁜을 의미하는 ‘mal’과 공기를 의미한 ‘aria’가 합쳐진 “말라리아”가 감염병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바로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은 늪지대에서 감염병이 잘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중해를 포위하다시피 하는 모양으로 대제국을 건설하고 1000년 이상 지속된 로마에서 지중해 연안 지역에는 오늘날 모기가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가 흔했다.
바로가 이야기한 나쁜 공기는 모든 감염병의 원인을 의미했고 이 생각은 2,0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중세 이후 근대에 접어들면서 의학 지식이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지만 나쁜 공기가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미아즈마(miasma)설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나쁜 공기를 의미하는 말라리아가 영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이며 19세기부터 오늘날과 같이 모기가 전파하고 주기적인 열을 특징으로 하는 감염병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까지 감염병의 원인으로 제기된 미아즈마는 그리스어로 ‘오염’을 의미한다. 즉 썩어가는 유기물에서 배출되는 ‘나쁜 공기’가 감염병을 전파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감염병이 아닌 비만과 같은 질병도 나쁜 공기에 의해 발생할 수 있었다.
미아즈마는 질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공기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안개, 증기와 같이 맑지 않은 공기에 오염된 물질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악취도 공기에 나쁜 물질의 존재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었으니 오늘날의 위생 이론과 유사한 점도 있었다.
1850년대에 크리미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젊은 여성들을 이끌고 참전하여 병원의 위생시설을 개선함으로써 환자 회복에 큰 공헌을 세운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도 미아즈마설 신봉자였다. 나이팅게일이 위생에 힘쓴 것은 미아즈마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또 19세기 말 독일에서 교수 출신으로 보건부 장관을 역임한 페텐코퍼(Max von Pettenkofer, 1818-1901)도 미아즈마설의 신봉자였다. 그는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탄저, 결핵에 이어 콜레라의 원인균을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자 코흐가 준 콜레라균을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 후에도 콜레라가 발생하지 않자 감염병은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미아즈마에 의해 발생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더 시간이 지나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면서 결국에는 코흐의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 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산업혁명과 도시화
위생이 중요하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성서 레위기에도 위생에 대한 내용이 여러 군데 기술되어 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때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공기 좋은 곳을 찾곤 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BC 460?~377?)도 공기, 물, 음식과 음료수의 중요성을 기술해 놓았다. 로마인들은 오늘날까지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는 수로를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 했고 목욕 문화가 발달하기도 했다.
근대가 되자 세상에 큰 변화가 다가왔다. 1693년에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1715)가 증기를 이용한 양수펌프를 발명함으로써 사람이 기계의 힘을 빌려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1769년에 와트(James Watt, 1736-1819)는 “화력기관에서 증기와 연료의 소모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여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산업혁명을 예고했다.
증기기관이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음이 알려지자 공장이 많이 설립되었다. 그러자 사람의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하기는 했지만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자는 더 많아졌다. 대체되는 노동력보다 새로 필요로 하는 사람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도시에 공장이 건설되자 일거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있지만 숙소를 비롯하여 모여드는 사람들을 수용할 준비는 부족한 상태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오랫 동안 중요 산업이었던 농업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단 100년만에 지위를 잃고 영국은 공업사회로 바뀌었다. 그러자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에 감염병이 전파되기에 아주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1840년에 영국의 상류계층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었지만 노동자는 22세에 불과했다. 이유는 이들이 거주하고 일하는 곳이 비위생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미생물을 발견하기 전이었지만 위생이 중요하다는 것은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에 따른 경제력 향상이 빈부격차를 크게 하고 하류계층의 생활수준 향상이 큰 과제로 대두하자 영국정부는 1830년대부터 빈곤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려 했다.
1843년에 영국 국민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자 채드위크(Edwin Chadwick, 1800-1890)는 위생개선운동에 투신했다. 그를 비롯하여 위생개선에 힘쓴 이들의 노력에 의해 1853년이 되자 영국 근로자의 연간사망률은 1,000명당 30에서 13으로 반 이하로 감소했다. 위생개선이 감염병 문제 해결에 중요한 요소임이 증명되었다.
● 감염병이 개인의 잘못에 의한 것만이 아님을 보여 준 스노의 지도
의학을 공부할 준비를 하던 10대 청년 스노(John Snow, 1813-1858)는 1831년에 광산에서 콜레라로 희생되는 이들을 목격한 후 의사가 되어 콜레라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콜레라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을 따라 번져가기만 이동속도보다는 느리다는 사실로부터 미아즈마가 아닌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병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의사가 된 후 산부인과와 외과의사로 활동하던 그는 1853년에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자 지도에 환자의 주소지를 표시해 보았다. 런던에 있던 두 상수도 회사의 공급지역을 조사한 그는 한 회사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환자가 발생했음을 알아챘다.
콜레라가 상수도 공급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낸 스노의 연구는 공중보건학의 중요성을 잘 보여 주었으므로 그는 “공중보건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킨 브로드가의 펌프가 봉쇄되면서 콜레라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스노는 물에 들어 있는 콜레라균이 콜레라를 전파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나쁜 공기가 아닌 새로운 감염원을 발견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점이다.
역사 이래 인류와 함께 한 감염병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나쁜 공기라는 막연한 개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세기 초중반에 위생과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산업혁명에 의한 공장 건설, 도시화, 환경개선, 상수도 공급과 같은 사회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참고문헌
1. Ernst Hempelmann, Kristine Krafts. Bad air, amulets and mosquitoes: 2,000 years of changing perspectives on malaria. Malaria Journal. 2013;12:232.
2. Stephen Corbett, Public Health and Social Justice in the Age of Chadwick Britain 1800–1854. Health Promotion International. 1999;14(4):381-382
3. 스티븐 존슨. 감염지도. 김영남 역. 김영사. 2008
4. 에드워드 골럽. 의학의 과학적 한계. 예병일 등 역. 몸과 마음. 2001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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