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아니고 아저씨라고, 전혜진의 손절 선언이 통쾌한 까닭('남남')
[엔터미디어=정덕현] 핏줄은 당기기 마련이다? 그 많은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클리셰 드라마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그 이야기였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남이지만, 핏줄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부모도 자식도 서로 껴안고 엉엉 우는 눈물바다를 연출하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니TV 월화드라마 <남남>에서 수십 년 세월을 뛰어넘어 핏줄이 서로 만나게 된 풍경은 사뭇 다르다. 식사 자리에서 핏줄이라는 이유로 선 넘고 들어오는, 결혼을 했다면 시아버지가 됐을 사람에게 은미(전혜진)는 곧바로 '손절'을 선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는 근본이 없고 아저씨네 집안은 참 예의가 없네요."라고 선을 그은 은미는 딸 진희(최수영)와 함께 식사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 덜컥 아이를 갖게 되어 홀로 낳아 진희를 키웠던 은미. 아이가 있는 줄은 모르고 그 사랑을 잊지 못했지만 워낙 집착과 고집이 강한 부모들 때문에 혹여나 은미가 해코지라도 당할까 거리를 뒀던 진홍(안재욱). 결국 진홍은 부모와 의절한 후, 은미를 찾아오고 진희의 존재도 알게 된다.
진홍 역시 저 클리셰 드라마들처럼 생물학적인 딸인 진희를 신경 쓰지만, 그 순간 은미가 선을 긋는다. "내 딸"이지 어떻게 "우리 딸"이냐는 것. 그 말의 의미를 진홍은 단박에 알아차린다. 생물학적인 딸일 뿐, 그는 진희와 함께 시간이 전무했으니 진정한 의미의 부녀 관계라 말할 순 없는 거였다. 그래서 진희는 진희의 삶이 있고 자신은 자신의 삶이 있다고 말하는 은미에게 공감하며, 진홍은 은미와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이렇게 적당한 선과 거리를 지켜오던 이들 관계에 갑자기 진홍의 부모가 끼어든다. 은미의 친구이기도 했던 진홍의 여동생 지은(우미화)이 진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 부모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 하지만 이 부모는 여전히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 만난 식사자리에서 당연하다는 듯 무시로 선을 넘는 말들을 한다. 진희에게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은 없냐며 경찰을 직업으로 가진 걸 은근히 무시하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냐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결국 이 무례함을 참다못한 은미는 진홍의 아버지를 '아저씨'라 지칭하며 손절을 선언한다.
은미의 이런 말과 행동에 대해 전형적인 클리셰 드라마라면 지은 같은 시누이가 될 인물이 뭐 저런 사람이 있냐고 발끈할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지은이 그렇게 무례한 부모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그린다. "아버지 그 고집이랑 집착 때문에 아들한테 의절 당해서 10년 가까이 얼굴도 못 보고 살면서 아직도 이러세요? 어떻게 자식 일거수일투족을 다 손아귀에 넣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시냐고요? 좀 마음에 안 차도 오빠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잖아요. 이번이 오빠가 가정을 이룰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이렇게 깨요?"
핏줄이라는 생물학적인 끈으로 묶인 가족의 의미가 그토록 클리셰 드라마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건, 우리네 비극적인 현대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산가족 찾기 같은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서 절절히 끓어오르는 핏줄에 대한 감정들이 남다른 가족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세대를 넘어 새로운 세대들이 살아가는 21세기다. 핏줄 같은 생물학적 끈보다 중요한 건 진짜 관계의 경험치다.
게다가 가족이라면 무조건 함께 지내며 걱정한다는 핑계로 간섭하는 것이 지금의 달라진 시대의 바람직한 가족관은 아닐 게다. 그래서 <남남>은 은미와 진희라는 모녀라기보다는 자매에 가까운 쿨한 관계를 새로운 가족으로 꺼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건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물학적 아버지지만, '아저씨'라고 부르는 딸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쿨하게 받아주는 진홍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리고 있다.
<남남>은 궁극적인 진짜 가족의 마지막 선택으로서 늘 껌딱지처럼 함께 지내던 은미와 진희가 각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과연 은미는 진희가 자신의 품을 떠나 그의 삶을 살아가는 걸 허용하고 나아가 응원해줄 수 있을까. 진짜 가족이라면 핏줄이라고 집착할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남남처럼 구성원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그만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남남>은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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