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람을 춤추게 하는 섬, 호주 탕갈루마

2023. 8. 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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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랜드 탕갈루마 에코 인문학 여행
6년간 탐색 끝 야생돌고래와 첫 접촉
신비로운 섬 속 사막, 난파선의 비밀
▲ 탕갈루마빌리지 야생돌고래 먹이주기

“호주 어디까지 가보셨나요?” 역대 최대 규모 최고 흥행의 FIFA 여자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린 호주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멜버른 등지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 많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계기로 가본 곳 중 최고는 아름다운 풍경과 섬사람들의 인심 속에, 돌고래, 펠리칸 등 야생 동물과 교감하며 ‘공생’의 참뜻을 깨닫는 퀸즈랜드주 탕갈루마(Tangalooma)의 에코(Eco) 인문학 여행이다.

15척의 난파선을 만나는 순간 솟아나는 연민, 섬 속 사막에서의 짜릿한 고독, 멀고 먼 낯선 섬에서 만난 BTS(방탄소년단) 아미(Army)와의 해질녘 정담, 우영우 혹등고래와의 조우도 잊을 수가 없다.

브리즈번강 하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75분 가면 모튼(Moreton)섬의 탕갈루마 빌리지를 만난다. 섬은 고래를 닮았다. 그리고 돌고래 라군(Dolphin Lake)도 있어 신비롭다.

▶6년의 탐색, 짜릿한 첫 접촉=해넘이가 시작되자, 일군의 사람들이 백사장에서 줄을 선다. 야생돌고래와 초면에 친구되는 법을 담은 스태프(Eco Ranger)들의 인문학강의는 길 수 밖에 없다.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체험이므로 나이 연로한 어르신,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 마음 속에 꿈을 품은 모든 이들이 1시간 가까이 인내하며 기다린다.

해가 지자 야생돌고래들이 탕갈루마 제티 선착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가벼운 점프, 스크류식 수영, 급가속 내기 등 다양한 재롱을 보여준다. 아무도 훈련시키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돌핀스 라이프스타일이다.

돌고래는 여행자 주변을 한두번 오가더니 착하게 내미는 작은 물고기를 받아먹는다. 손끝에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다. 이 먹이주기가 그들에게 메인디시가 되면 야생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에, 이날 돌고래들에겐 하루섭취량의 10~20%만 준다.

1986년 어느 날, 모자(母子) 돌고래가 찾아오자, 탕갈루마 리더인 베티 오스본은 엄마에겐 ‘뷰티’, 아기에겐 ‘보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는 버들치 만한 작은 물고기를 매일 던져준다. 1992년 1월, 뷰티는 베티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직접 전해주는 물고기를 처음으로 받아먹었다. 6년간의 우정만들기 끝에 이뤄진, 짜릿한 찰라의 접촉이었다. 뷰티와 베티의 사랑은 멜로극 후반부에야 연인이 키스하는 K-드라마를 닮았다. 이후 식구는 늘어 40년간 인연은 맺은 야생돌고래는 모두 22마리, 현재 출석부엔 12마리가 적혀 있다.

▶장롱 속도 알게 된 우정= 야생이지만 돌고래 각각의 이름이 다 있다. 오스본 공동체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뷰티가 세상을 하직하고 현재, 31세 에코가 최연장자이다. 그는 늘 뷰티 할머니가 찾던 1번 레인을 고집한다. 에코는 가장 현란한 재주를 인간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고속 스크류 잠영이 그의 장기. 나리는 상어에게 물려 다친 날, 늘 그랬던 것 처럼 탕갈루마에 놀러와 에코 레인저에게 “오빠, 나 아파”라는 듯 응석을 부리더니, 치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여행자들은 이 체험을 하면서 동물 ‘길들이기’가 인간 중심적인 과정임을 반성하게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고귀한 진리를 깨닫는다. 퀸즈랜드주는 야생동물과의 교감 프로그램을 탕갈루마에서만 하도록 허용했다. 탕갈루마 시스템은 전세계 야생동물 교감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탕갈루마 빌리지에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좋아하는 초대형 혹등고래 관찰 탐사선도 떠난다. 6~10월 관측률 99.9%.

▶시크한 쿠카부라=부엉이와 매의 중간처럼 생긴 남반구 조류 쿠카부라, 펠리칸, 가마우지와의 만남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다른 나라 새들은 자기들끼리 호젓하게 놀지만, 오는 사람 마중하고 가는 사람 배웅하듯 늘 제티 선착장 근처 사람 많은 곳에서 노닌다.

먹이주기 시간이 되자 덩치 큰 펠리칸은 판단력이 좀 약하고 몸도 무겁다. 이에 비해 몸집 작은 가마우지는 영리하고 애교도 많다. 각각 톰과 제리에 비유할 만 하다.

에코 레인저의 손동작을 잘 캐치하는 가마우지가 먹이를 몇 번 채가면, 참고 참던 펠리칸이 가마우지한테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둘은 늘 같은 해변구역에 같이 논다.

쿠카부라는 좀 점잖고 시크하다. 에코레인저의 생태 설명이 길면 외면한다. “이 오빠, 밥 안주고 뭐를 이래 씨버래쌌노”하는 표정이다. 한 마리만 레인저의 먹이박스 위에 올려놓고 설명할 때에도 다른 쿠카부라는 외면한다. “가스나, 오빠가 니만 좋아한다고? 희망고문이다. 꿈 깨라”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들의 자연 섭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적은 양만 주는데, 공평하게 먹인다. 시크한 태도를 보이던 쿠카부라는 다음날 오후 4시에 또, 밀당의 고수인 이 오빠를 찾아 온다.

▶난파선의 비밀과 섬 속 사막=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 북쪽에 위치한 탕갈루마 난파선 역시 이 섬의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이다. 15척의 난파선이 근해에 침몰한 모습을 보는 순간, 신안, 태안, 사우디 제다, 스페인 비고의 보물선이 품는 사연이 떠오른다. 모종의 감성이 솟구친다. 역전승에 실패한 상유십오척인가?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사실은, 1963~1984년 퀸즐랜드 주 정부가 수명이 다한 배 15척을 가라앉힌 것이었다. 김이 좀 새지만 주정부가 머리를 잘 썼다. 난파선을 보는 순간 감성이 솟구치고 자연히 이 섬에 대한 지구촌 여행자들의 정감이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듯 하다. 그럼에도 스노클링이나 카약을 이용해 가까이 가보면 처음 느낀 감성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속았음에도 속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륜구동 버스에 몸을 실은채 정글을 헤치고 모랫길을 느리게 기우뚱거리며 달리다보면 어느새 노란모래, 파란 하늘 두 색 만이 존재하는 사막 한가운데 이른다. 사막썰매를 타고 나면 인생사진을 건진다. 두색의 경계선인 공지선에 발을 딛고 서도 작품이고, 그 프레임에 내 썰매 질주 풍경을 끼워서 찍어달라고도 해본다. 혹시 아라비아 룩의 소품을 장착했다면, 어디에 서있어도 그림이 된다.

▶BTS 정국이 거기서 왜 나와=해질녘 오픈을 시작한 파이어 스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스태프가 한국말 인사를 한다. 반가운 마음에 “어디가 고향이세요?” 라고 물었더니 “저는 시라카와현 가나자와에서 온 일본사람 마리코예요”라고 답했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을 너무 좋아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드라마를 접했으며 문화를 알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인 아미를 남반구 호주의 외딴 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여러모로 행복했던 순간을 뒤로 한채 펠리컨의 배웅 속에 섬을 떠나면서, 한국인 일행들은 동물도 사람도 모두 진정한 친구가 되는 탕갈루마는 지상 최고의 여행지라는 확신을 굳혀가고 있었다.

퀸즈랜드 탕갈루마(호주)=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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