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은행휴일과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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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은행은 그 돈을 안전한 금고에 보관해두지 않았습니다...다수의 은행이 예금자가 맡긴 돈을 투기하고 무모하게 빌려주는 잘못을 범했습니다...우리 금융 시스템의 재조정에는 통화보다 더 중요하고 금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으며 그것은 국민의 신뢰입니다."
무너진 금융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은행 휴일을 단행하고, 글래스-스티걸법, 연방예금보험공사를 발족하는 등 현대금융의 기초를 닦은 루스벨트의 과감하면서도 세심한 정책 조정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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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은행은 그 돈을 안전한 금고에 보관해두지 않았습니다...다수의 은행이 예금자가 맡긴 돈을 투기하고 무모하게 빌려주는 잘못을 범했습니다...우리 금융 시스템의 재조정에는 통화보다 더 중요하고 금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으며 그것은 국민의 신뢰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 직후 첫 노변정담(fireside chat)에서 한 말이다. 취임 36시간 만에 대통령포고령 2039호를 통해 유례없는 ‘은행휴일(bank holiday)’을 단행한 것을 설명하고 ‘긴급은행법(Emergency Banking Act)’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혔다. 임기 중 30번에 걸친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뢰는 금융 시스템을 떠받치는 구조물이다. 신뢰에 금이 가면 금융 시스템은 순식간에 모래성이 된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금융이라는 철옹성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해인 1932년 미국에서 2294개의 은행이 문을 닫고 17억달러의 예금자산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시계를 2023년으로 돌린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얼마 전 새마을금고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례만 해도 그렇다.
생면부지의 은행원에게 거리낌 없이 신분증을 내밀고 은행에 금쪽같은 돈을 맡기는 행동의 전제조건은 은행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신분증을 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돈을 유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하고 이자를 또박또박 줄 것이라는 믿음, 신뢰 말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에서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사건사고는 신뢰의 문제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고객의 동의 없이 계좌를 만들고, 고객들이 맡긴 돈을 야금야금 쌈짓돈처럼 쓰는 것도 모자라 일반인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수백억 단위의 횡령이 스스럼없이 자행된다. 이제 몇억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이 참말이 된 세상이다. 이쯤 되면 ‘과연 은행을 믿을 수 있을까? 돈을 갖고 도망간 계주와 다를 게 뭐가 있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게다가 은행에만 신뢰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는 성에도 차지 않는다. 금융 시스템을 떠받치는 신뢰에 구멍이 나는 동안 금융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은행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감독하는 금융당국의 ‘갈지자’ 정책도 마찬가지다.
예금이자와 대출이자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시시콜콜 개입해 시장 왜곡을 부추기고, 떨어지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풀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불과 한 달여 만에 50년 만기 주담대를 손질해야 한다, 인터넷뱅킹이 부채를 키우고 있다며 윽박지른다. 금융정책을 이해하려면 독심술이라도 배워야 할 판이다.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말이 틀린 상황에서 신뢰는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무너진 금융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은행 휴일을 단행하고, 글래스-스티걸법, 연방예금보험공사를 발족하는 등 현대금융의 기초를 닦은 루스벨트의 과감하면서도 세심한 정책 조정이 부러울 뿐이다. 무엇보다 신뢰의 구조물이 주춧돌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루스벨트식 노변정담을 보고 싶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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