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신인' 쉽게 잡는 류현진, FA 시장 나와도 ML 잔류 청신호…이것이 원조 괴물의 품격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메이저리그에서 한창 주목을 받은 '괴물 신인'도 쉽게 잡았다. 이렇게 잘 던지는데 내년에도 당연히 빅리그에서 뛰어야 할 것 같다. 아직 한국에 돌아오려면 멀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이야기다.
사실 류현진이 지난 해 6월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을 때만 해도 그의 재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술 후 재활에 1년 여의 시간이 필요한데다 올해로 벌써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를 감안하면 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미 류현진은 전성기가 지난 투수로 분류된다. LA 다저스 시절이던 2019년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를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등극했던 류현진은 그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최종 2위에 오르는 등 생애 최고의 시즌을 치렀다. 그리고 FA 시장에 나와 토론토와 4년 총액 8000만 달러(약 1072억원)에 사인하면서 새 출발에 나섰다.
물론 이때도 그의 성공 가도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팀들이 즐비해 악명 높기로 소문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제 발로 뛰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걱정은 사치였다. 류현진이 토론토에서 첫 선을 보인 2020시즌에도 '괴물투수'의 품격을 유지했다.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단축 시즌이 치러지기는 했으나 5승 2패 평균자책점 2.69로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면서 주위의 우려를 잠재웠던 것이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3위에 랭크될 만큼 뛰어난 투구를 자랑했다.
류현진은 당연히 2021년에도 개막전 선발투수로 출발했다. 그러나 용두사미의 시즌이었다. 로비 레이가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투구를 자랑하면서 에이스 자리를 뺏었고 시즌 중반에는 호세 베리오스가 트레이드로 토론토에 합류하면서 류현진의 등판 순서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개인 최다 타이인 14승을 거두는 성과는 분명 있었지만 평균자책점이 4.37로 치솟으면서 하향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류현진의 국내 복귀설도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마침 류현진은 올 시즌을 마치면 토론토와 맺었던 4년 8000만 달러의 FA 계약이 종료된다. 류현진의 선택에 따라 그가 마음만 먹으면 국내 복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류현진은 2006년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선수다. 2012년까지 한화에서 뛰면서 통산 2점대 평균자책점(2.80)에 100승 가까운 성적(98승)을 남기면서 KBO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벌써 한화를 떠나 메이저리그로 온지 10년 여의 시간이 흐른 상태. 그렇다고 둘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니다.
류현진은 지난 해 2월 메이저리그 직장폐쇄 여파로 출국 일정이 지연됐는데 한화가 거제에 마련한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여전히 끈끈한 사이임을 보여줬다. 류현진 또한 한화 스프링캠프에 잠시 합류하면서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한화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라고 말해 선수 생활의 마무리는 한화에서 할 것이라는 약속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류현진이 당장 내년에 국내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 수술 후 재활을 거쳐 1년 여만에 마운드로 돌아온 류현진. 그는 복귀 후 4경기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1.89로 맹활약하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류현진의 진가가 발휘된 순간은 바로 21일(이하 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와의 방문 경기에서였다. 신시내티는 한때 12연승을 질주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던 팀. '괴물 신인' 엘리 델라 크루즈를 중심으로 젊은 타자들로 라인업을 재편한 팀이기도 하다.
류현진은 델라 크루즈를 상대로 삼진 2개를 잡는 등 5이닝 동안 83구를 던지면서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며 팀의 10-3 대승을 이끌었다. 이날 토론토 타선이 터뜨린 홈런 5방은 마치 류현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포'처럼 보였다.
특히 델라 크루즈와의 승부는 백미였다. 류현진은 1회말 델라 크루즈를 2구 만에 3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았는데 87마일(140km) 포심 패스트볼로 허를 찔렀다. 3회말 1사 1루에서도 다시 델라 크루즈를 만나 풀카운트 접전을 펼친 류현진은 6구째 66마일(106km) 슬로우 커브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고 삼진 처리를 했다.
5회말 2사 1,2루 위기에서도 그랬다. 초구 78마일(126km)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가볍게 스트라이크를 잡은 류현진은 2구째 88마일(142km)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바로 67마일(108km) 커브였다. 류현진의 커브가 아래쪽 스트라이크존을 관통하자 델라 크루즈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델라 크루즈는 '천재타자'로 불리는 괴물 신인이다. 올해 6월 혜성처럼 등장해 타율 .257, 출루율 .309, 장타율 .455, OPS .764에 10홈런 27타점 19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델라 크루즈는 전형적인 호타준족 스타일의 타자로 꼽힌다. 이미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때부터 향후 차세대 슈퍼스타로 성장할 재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다. 올해 그의 나이는 겨우 21세. 앞으로 '꽃길'을 예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류현진의 완승이었다.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겨우 140km대를 전전했지만 구속이 전부는 아니었다. 구속 차이가 많이 나는 커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적잖은 혼란을 안겼다. 타자 입장에서는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 뿐 아니라 또 하나 신경써야 할 구종이 늘어난 셈이다.
애초부터 류현진은 어떻게 신시내티 타선을 효과적으로 요리할지 '100% 완벽 공략법'을 갖고 있었다. 류현진의 시선에는 젊은 타자들이 많은 신시내티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신시내티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해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데 중점을 뒀다"는 류현진의 말에서 그의 전략이 100% 성공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도 "류현진은 신시내티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잘 이용했다. 정말 좋은 내용의 경기를 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에에서도 "류현진은 스마트한 투수다. 상대 타자가 스윙하려는 열망을 누구보다 잘 읽는데 이는 젊고 공격적인 타자들을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라고 류현진의 영리한 피칭을 조명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토 구단 SNS에서는 류현진을 두고 "류현진 폼 미쳤다"라고 한국어로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괴물의 마스터클래스(Monster Masterclass)'라고 표현한 것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류현진의 투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처럼 마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 같은 모습을 마운드에서 보여준 것이다.
이제는 노련함까지 더한 류현진의 투구는 여전히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류현진이 지금과 같은 투구를 시즌 끝까지 이어간다면 올해로 토론토와 맺었던 4년 계약이 끝나더라도 그를 원하는 팀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류현진의 나이를 고려하면 이제는 거액의 장기 계약을 따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짧은 기간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발투수로 FA 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류현진의 한국 복귀는 여전히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류현진은 토론토의 선발로테이션 순서를 감안하면 오는 27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3승 달성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클리블랜드 역시 젊은 타자들 위주로 짜여진 팀이다.
이미 류현진은 지난 8일 클리블랜드와의 방문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클리블랜드 타선과 겨뤘던 적이 있다. 당시 4회말 2사 후 오스카 곤잘레스의 강습 타구에 오른쪽 무릎을 맞아 더이상 투구를 이어가지 못했으나 4이닝 동안 안타를 1개도 맞지 않을 정도로 그의 노련한 피칭이 돋보인 한판이었다. 볼넷 1개만 허용한 것이 전부였고 실점은 당연히 없었다.
만약 타구가 무릎을 맞지 않았다면 충분히 5회는 물론 6회 이상 투구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페이스가 뛰어났다. 신시내티전에서의 성공적인 투구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류현진이 또 한번 클리블랜드 타선을 잠재울 수 있을까. 물오른 류현진의 노련미를 이미 확인한 만큼 또 한번의 호투 역시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다.
이제 류현진은 스스로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올 시즌 남은 기간에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나와도 메이저리그 잔류에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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