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먹은 것" 김정은에 욕 먹은 '2인자' 北 총리, 몰락 위기
'김덕훈 사상 총화' 지시에 숙청 가능성도…대대적 인선 전망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북한 경제를 총괄하며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은 것으로 평가됐던 김덕훈 내각총리가 몰락 위기에 놓인 모양새다. 간석지 침수 현장을 찾은 김 총비서가 이례적일 만큼 높은 강도로 김 내각총리를 비롯해 내각을 강하게 질타하면서다.
22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총비서가 전날인 21일 평안남도 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안석간석지 피해 복구 현장을 찾아 피해가 발생한 동기와 원인을 분석하며 일꾼들의 '매우 무책임한 직무태만 행위'를 심각하게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특히 경제사령부로 통하는 내각과 그 책임자인 김덕훈 내각총리를 겨냥해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이번 안석간석지 침수가 간부들의 '무책임성과 무규율'에 의한 '인재'라며 내각에 책임을 지운 것이다.
김 총비서는 안석간석지 논 침수 보고를 받은 김 내각총리가 '관조적인 태도'로 현장을 한 두번 돌아보고는 부총리를 보냈을 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상황을 대하는 그의 해이성과 비적극성을 잘 알 수가 있다"며 "나라의 경제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라고 질타했다.
또 "최근 몇 년간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다"거나 "일꾼들의 무책임성과 무규율성이 난무하게 된 데는 내각총리의 무맥한 사업태도와 비뚤어진 관점에도 단단히 문제가 있다"며 김 내각총리를 겨냥해 여러 차례 고강도 비난을 가했다.
김 총비서는 간석지건설국이 국가건설 허가를 받지 않고 배수구 구조물 설치 공사를 자의로 승인하고, 간석지건설국장이 공사용으로 받은 연유를 몰래 은닉하는 등 "내각의 모든 행정 경제 사업들이 제다리로 움직이고 있다"라고 내각 전반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일꾼들에게는 '건달뱅이', '틀려먹은 것들'이라고 욕에 가까운 막말도 가했다.
김 총비서가 일꾼들을 기강잡기 차원에서 업무 태도를 질타한 적은 많지만 이 정도로 거친 비판을, 주민들이 다 보는 신문을 통해 그대로 보도한 것은 드물어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김 내각총리는 북한의 가중된 경제난과 경제 중시 기조 속에서 김 총비서를 대신해 경제 시찰도 나서며 한때 '2인자'에 가깝다는 평까지 받은 인물인데 하루아침에 몰락 위기에 처한 모양새가 됐다.
지난 2020년 8월 내각총리에 임명된 김덕훈은 권력의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하며 김 총비서로부터 꾸준한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비서보다 먼저 호명되면서 경제난 속에서 오히려 위상이 올라갔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 총비서는 김 내각총리와 관련해 "무책임한 사업태도와 사상관점을 당적으로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당 차원에서 고강도로 총화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결과에 따라 혁명화, 숙청까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총비서는 또 부정비리를 저지른 간석지건설국장을 당규율심의위원회에서 '출당'을 심의할 것을 비롯해 간석지건설국, 국가건설감독성, 평안남도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남포시국토환경보호관리국, 남포시건설감독국 등 내각 기관에 대한 집중 검열을 시작했다. 조만간 내각을 향한 역대급 사정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총비서가 이처럼 간석지 침수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식량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올해 경제 분야 과업 중 첫 번째로 제시된 '알곡 고지 점령'을 위해 증산은 물론 농업 인프라 개선 전반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간석지 조성은 지난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농업 증산을 위한 주요 과업으로 제시된 사업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조치는 북한이 농업, 먹는 문제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전쟁 준비 박차'라는 강경 기조 유지와 함께 먹는 문제 해결, 계획한 국가경제 발전을 다그치기 위한 고강도의 내부 기강 확립 차원의 후속 조치들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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