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감독도 놀란 박찬호 성장… 오지환 옛 기억 소환,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박찬호 선수가 이렇게 성장을 했나요”
두산을 맡은 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그중 3회 우승으로 ‘두산 왕조’를 일군 김태형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지난 20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KIA 경기 도중 6회 한 선수의 플레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KIA 유격수 박찬호(28)의 공격적이면서도 멋진 수비였다. 비록 아웃카운트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땀을 쥐고 바라볼 만한 장면이었다.
3-3으로 맞선 6회 삼성이 반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2사 2,3루에서 김현준이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3루타로 리드를 잡은 직후였다. 여기서 김성윤이 3‧유간 깊숙한 곳으로 타구를 날렸다. 보통 3루수가 앞에서 커트하지 않으면 유격수에게는 기회가 잘 없는 코스. 그런데 이를 포기하지 않은 박찬호가 어느덧 그 자리로 가 공을 낚아 챘고, 곧바로 혼신의 힘을 다해 1루로 송구했다.
김성윤도 발이 빨랐기에 결과는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그 사이 3루 주자 김현준이 홈을 밟아 삼성이 6-3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수비에 팬들과 김 위원은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까지 현장에서 박찬호라는 선수를 충분히 봐 왔을 김 위원은 “박찬호가 이렇게 성장을 했나”면서 “세이프가 눈에 안 들어온다. 박찬호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렇게 성장을 했다”고 흐뭇한 어투를 보였다.
야수들에게 있어 공격과 수비는 보통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수비에서 역동적인 몸놀림을 선보인다는 건 대개 최근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고 경기력 또한 물이 올라왔음을 상징하는 지표가 된다. 이 화려하고 호쾌한 수비는 박찬호의 올 시즌 상승 그래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주루는 원래 됐고, 수비는 역동성에 안정감까지 찾아가고 있으며, 공격은 경력 최고치를 써내려갈 기세다.
캠프 때 얻은 손목 부상으로 시즌 초반이 힘겨웠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해 완전히 궤도에 오른 경기력으로 KIA를 공‧수 모두에서 끌고 가고 있다. 2019년 39도루, 지난해 42도루가 말해주듯 리그 최고의 센스를 자랑하는 주루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됐다. 여기에 수비에서의 잔실수가 줄었다. 궁극적으로 공격까지 감을 찾아가며 박수를 받고 있다. 6월 한때 수비가 한창 흔들린 적이 있었는데 무너지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기량을 찾았다.
후반기 23경기에서 타율 0.386(83타수 32안타)을 기록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출루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시즌 타격 성적은 99경기에서 타율 0.299, 출루율 0.358을 기록 중이다. 포지션이 유격수임을 고려하면 타율 자체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과다. 여기에 삼진은 계속 줄고, 볼넷은 계속 늘어난다. 장타에 대한 욕심보다는 스윙을 더 콤팩트하게 가져가면서 정타 비율은 늘어나고 삼진은 줄어들었다. 박찬호가 자신에 맞는 스윙을 드디어 찾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느덧 생애 첫 골든글러브에 도전할 만한 성적을 만들어간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아직은 섣부른 예상이지만, 현재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겸손할 이유도 없다. 박찬호는 규정타석을 채운 유격수 중 압도적으로 높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에서도 0.728로 지난해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오지환(LG‧0.738)에 이어 2위다.
물론 전체적인 공격 생산력은 오지환이 앞서 있는 건 사실이고, 오지환의 수비력도 리그 최정상급이다. 다만 오지환이 올해 잔부상으로 박찬호보다 적은 경기에 나선 것도 사실이다. 이는 시즌 막판 누적 기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후보인 박성한(SSG)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차출이 예정되어 있어 성적 쌓기가 불리하다.
골든글러브를 따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수상 여부와 별개로 박찬호의 ‘브레이크 아웃’이 올 시즌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다. 2020년부터 꾸준하게 팀의 주전 유격수로 나서고 있는 박찬호는 생동감 넘치는 수비와 주루와 별개로 공격력이 처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장타가 부족해 공격 생산력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타율이 높은 선수도 아니었다. 선수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130경기에서 타율 0.271을 기록하며 반등하기 시작했고, 올해는 개인 경력 처음으로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 100 이상을 기록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통계전문사이트 ‘스탯티즈’의 집계에 따르면 박찬호의 2020년 wRC+는 40.2, 2021년은 77.7로 리그 평균보다 한참 못 미쳤다. 지난해는 95.0으로 평균 턱밑까지 올라왔고 올해는 107.0으로 드디어 100의 문턱을 넘어섰다. 수비는 한 차례 고비를 넘긴 뒤 원숙해진 느낌이 분명 있다.
사실 오지환도 그런 과정을 밟았다. 신인 시절부터 팀의 차세대 유격수로 큰 기대를 모았던 오지환이다. 팀 사정상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경기에 나가는 약간의 행운도 있었다. 하지만 번뜩이는 재능과 별개로 수비가 여물지 않은 시기가 있었고, 그래서 비판을 받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처음부터 골든글러브 유격수는 아니었던 셈이다. 한 해 잘하면, 그 다음 해 못하는 패턴을 보이는 등 굴곡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오지환도 1군 통산 500경기 이상 나가면서 자기 야구가 정립되기 시작했고, 장타와 수비력을 모두 갖춘 유격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박찬호는 오지환의 ‘각성 시점’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박찬호는 군 문제로 오지환에 없었던 공백기가 존재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흐름을 이어 간다면 박찬호로서는 2023년이 개인 경력에서 굉장히 중요한 한 해로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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